▲강경화 외교부장관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남소연
강 장관은 미국의 외교가들과 직접 살을 맞대며 일을 한다. '6.25 전쟁의 원흉이 다름 아닌 당신 나라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글이 미국 언론에 실렸을 때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게다가 '국수주의' 비판을 받는 미국의 현 정부가 과거 한반도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 자기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의 외교 수장으로서 어찌 됐든 그들과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장관이 민감한 문제와 관련해 한발 물러나 '당신들에게 비수를 들이댈 생각을 하면서 당신들과 협상하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을 때, 미국 외교 당사자들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한 국가의 외교 수장으로서 소신이 꺾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많은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하는 외교 실무자들에게 보다 우리의 국익을 도모할 스탠스를 유연하게 확보해줬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당신들과 선입견 없이 솔직히 대화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 셈이니까.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국가의 리더가 역사 앞에 역적이 될지언정 드러나지 않은 실익을 위해 자기 개인의 명예나 명분 혹은 소신을 꺾음으로써 국가의 안정에 기여하는 예를 종종 보게 된다.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를 일으킨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로마가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살펴보자. 로마에 복수심이 불타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그는 당시 전략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전투에 능했고 그의 군대는 막강했다.
초반 몇 전투에서 허무하게 한니발 군사에게 패한 로마는 파비우스 막시무스 집정관에게 로마군의 통수권을 맡긴다. 파비우스는 용맹한 한니발 군대와 제대로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싸우는 시늉만 하고 후퇴하며 매번 전투에서 패했다. 한니발 장군의 군사가 먼 길을 돌아 원정 왔다는 사실에 착안해 스스로 고립시켜 본국인 카르타고로 돌아가게 만드는 전술을 택한 것이다.
로마제국의 장군이 연이은 패배를 당하는 동안 전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로마 시민과 원로들은 그를 '겁쟁이', '느림보'라 비난했다. 더욱이 그의 지연 전략으로 인해 한니발 군사가 머문 로마지역의 백성들은 각종 횡포에 시달렸고 또 다른 지역도 오랜 전쟁으로 굶주려야 했다. 그 당시 그는 정말로 역사 앞에 역적이 될 위기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각종 욕을 먹으며 사실상 '역적'이 됐으나 보다 큰 실익을 얻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지연 전략을 고수했다. 하지만 로마 시민은 장기화되는 전쟁에 지치고 제대로 된 승전보를 전하지 못하는 파비우스 장군 대신 바로 장군을 새로 내세운다. 결국 전투에서의 승리와 적극적인 공세라는 명분과 명예를 입은 바로 장군은 대규모 군대를 모아 한니발 장수와 결전을 치르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칸나이 전투다.
전쟁의 달인인 한니발 장군의 군대에 바로 장군의 군대는 대참패를 당한다. 6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 거의 전원 몰살 수준에 가까운 숫자였다. 반면 한니발 장군의 군대는 고작 6000명의 사상자가 있었을 뿐이다. 이 패배로 로마는 충격을 받고 다시 파비우스를 장군으로 임명해 전투에 임했다. 그는 다시 지연 작전을 펼쳤고 결국 한니발 장군은 장기화된 전투에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돼 결국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한니발 장군은 긴 전쟁 동안 단 한 번의 전투도 패하지 않았으나 전쟁에서는 지는 아이러니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파비우스 장군이 자신이 역사에 역적이나 겁쟁이로 기록될 수 있었음에도 실익을 위해 지연 전략을 고수하지 않았다면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시민과 원로에게 욕을 먹은 그의 결단으로 인해 수하의 장군들과 로마 군사들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전쟁에서 실익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전술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한니발 장군의 본토인 카르타고를 역으로 공격해 본국에서 한니발 장군의 복귀를 서두르게 했던 것이다. 이 전략은 한니발 장군이 더 오랫동안 로마에 머무를 수 없었던 직접적 요인 중 하나다.
의지만으로 미국을 상대할 순 없다오늘날 미국의 많은 주장에 문제가 많고, 여러 발언이나 정책 방침이 자국 중심적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안타깝게도 이런 미국이 여전히 한반도 정세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6.25 전쟁이 강대국들의 대리전이었다는 한강 작가의 역사 인식에 동의한다면, 오늘날 한반도의 문제 역시 우리의 소신 있는 주장과 발언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현실 인식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미국 국방부는 괌에 위치했던 B-1B 폭격기를 북한 동해 해상에 비행시켰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 폭격기가 지하 벙커도 박살 내는 폭탄이 탑재 가능해 북한이 가장 꺼리는 폭격기 중 하나라고 한다. 과거 이 폭격기가 한반도에 출격할 때는 우리 공군과 연합작전으로 출격하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나 이번 출격은 예외적으로 미국이 대한민국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행했을 가능성을 전문가들은 제기한다. 물론 청와대는 반박했다.
사실이 어떠하든 간에 북한은 현재 남한보다는 미국과의 협상을 원하는 눈치고,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 속에서 미국이 남한과 대화 없이 혹은 남한과 제한적으로 소통하며 북한을 도발하는 군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반도 정세가 남한의 올바른 평화적 의지만으로 문제를 풀기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남한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며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려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이 북한을 도발할 어떤 행동을 독자적으로 펼칠 경우 북한은 다시 그에 대응해 도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각종 언론과 여론이 흔들리고 남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은 더욱 제한받게 된다.
바로 코앞까지 쳐들어온 청과 남한산성에서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 있던 예조판서 김상헌, 즉 오늘날로 따지면 외교부 장관이었던 그는 소신과 명분을 택했다. 당시 주권자였던 왕이 형제 관계를 맺고 있던 청의 황제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는 모양새는 죽음보다 버티기 힘들었고, 끝까지 전쟁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김상헌의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그 소신과 명분으로 인해 정작 고통을 받은 것은 백성이었고 잃은 것은 국익이었다.
외교란 것이 항상 옳은 말과 당연한 말만 해서 국가의 복잡한 현안을 풀 수는 없다. 특히 그 나라의 외교 정세가 매우 역동적이고 위급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 한반도는 강대국 간의 알력과 압력이 들끓고 있는 '압력밥솥' 같은 상황이다. 이 정세 속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국가 중 하나인 미국에는 어느 때보다도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고 글과 강 장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타당하지 않은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강 작가와 국민은 외교부 장관이 아니다. 그들은 강 장관의 발언을 비판할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 국민은 평화를 원하고, 과거 전쟁의 책임이 당시 강대국들의 알력다툼에도 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이 시대에, 이런 복잡한 위기 상황 속에서 한국의 외교부 수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는 데는 때론 국민에게 이런저런 비판을 받을 의무와 책임도 포함돼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만약 강 장관의 발언에 이런 계산이 들어있다면, 이번 일에 대한 비판이 장관의 자질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만에 하나 장관이 그런 수를 뒀다면, 어느 한 편에서는 장관의 그런 수를 읽고 비판의 수위를 넘지 않는 국민의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강경화와 한강은 각자의 일을 했을 뿐이다물론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한 문학 작가의 글에 한 나라의 외교부 장관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외교부 장관이 나서서 먼저 그 글에 자신의 뜻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 장관이 그 글에 대한 의견 표명을 강요받은 자리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이었다. 따라서 그는 해당 질문에 공식적으로 답해야 했다. 둘째, 한강 작가의 글이 <뉴욕타임스>에 실렸고 그것이 만일 미국 외교가들에게 회자된다면, 그것은 이미 외교 담론 속에 들어온 것 아닐까. 명확히 이 문제를 문학과 외교라는 이분법으로 분리해 나눌 수 있을까?
결과론적이지만 각자 자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와 국민은 그들의 임무에 충실했고 장관은 외교를 위해 비록 소신은 꺾었어도 나름의 발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메시지 모두 미국에 동시에 전달됐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평화를 원하고 과거 한국 전쟁이 강대국들의 의지로 전쟁이 일어났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메시지와, 그런 국민의 인식과 압력 속에서 협상에 임하는 한국의 외교가들은 자국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당신들과 협상에 임하려 노력한다는 메시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