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 8. 15. 서울. 대한민국정부수립기념식장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
맥아더기념관
'유종의 미'나는 항공사 직원에게 따지는 걸 체념하고, 그 자리에서 마중 나올 미국 박유종(79) 선생에게 전화했다. 깊은 밤중이었지만 다행히 받았다.
나의 돌발적인 사정을 듣고 난 박유종 선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변경된 시각에 맞춰 덜레스 공항으로 마중 나오시겠다고 했다. 내가 직원에게 가장 빠른 비행기 항공권을 부탁하자 그는 낮 1시 출발 UA892기 인천-샌프란시스코행 항공권과 샌프란시스코-워싱턴행 오전 9시 36분 UA516기 항공권을 즉석 발권해줬다. 그러면 워싱턴 도착은 22일 오후 6시 23분으로 애초보다 3시간 정도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미국 박유종 선생에게 덜레스 공항 도착예정 시각을 알린 다음, 다른 게이트에서 인천발 샌프시스코 여객기에 탑승했다. 다행히 그 여객기는 좌석이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세상만사 액운만 닥치는 게 아니라고, 나는 넉넉히 세 자리를 모두 차지하면서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비록 이코노믹석이지만 비지니스석 부럽지 않았다. 그날 오후 1시에 인천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날짜상 그날 오전 6시 30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닿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새벽은 마치 보석을 뿌린 듯 아름다웠다. 호기심 많은 늙은이는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두루 구경하고 싶었지만 모든 게 여의치 않았다. 귀국 때는 이곳에서 환승하자면 10시간을 머물지만 그때는 한밤중이라 별 수 없이 공항에 갇혀있어야 할 팔자였다. 우동 가게에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시골 영감티를 내지 않고 눈치껏 표지판을 보며 오전 9시 35분 워싱턴행 UA516기에 올랐다.
그날 오후 6시 23분, UA 516기는 정확하게 IAD(덜레스 공항)에 날개를 접었다. 이번 나의 미국행은 네 번째지만 워싱턴 덜레스 공항을 통한 입국은 두 번째다. 하지만 10년 이전이라 가물가물했다. 그저 말도 통하지 않고 길을 잘 모를 때는 다른 승객들을 눈치껏 보면서 따라가면 크게 실수가 없다.
나는 여러 승객들을 따라 곧장 입국장으로 가는데 짐을 찾는 곳에 낯익은 사람이 서서 나를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고 흔들었다. 박유종 선생이었다. 곧 우리는 악수가 부족해 서로 부둥켜 안았다. 꼭 10년 만의 재회였다.
"건강은 괜찮습니까?""네, 덕분에. 지난 봄부터 한 5개월 된통 앓다가 얼마 전에 일어났지요.""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저를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그렇지 않아도 집사람이 뭐라고 하기에, 우리는 이번에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대꾸하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더군요.""박유종 선생님의 '유종의 미'라는 말은 정말 말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