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피의자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하고 있다.
이희훈
이날 오후 1시 55분께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에 나타난 남 전 원장은 "국정원 돈을 왜 청와대에 상납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조사실로 향했다. 취재진이 계속 따라붙자 마지못한 듯 가던 길을 되돌아와 취재진이 설정한 포토라인에 섰다. 하지만 각종 의혹을 묻는 질문에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최근 사법방해 사건으로 수사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와 정아무개 국정원 소속 변호사의 명복을 빈다고만 했다.
취재진은 남 전 원장을 따라 청사 안까지 따라가 "왜 청와대에 돈을 상납했나",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는 일이 국가를 위한 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납을 지시했느냐"라고 물었다. 남 전 원장은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다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억울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던 중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를 포착했다. 상납금은 최소 40억 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또한 법적 근거 없이 상납 받은 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인 비자금으로 유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전달받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역시 검찰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받았다"고 진술했다.
앞서 수사팀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지속적으로 상납받은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수수·국고손실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죄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사법방해 혐의로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다.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때 국정원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비해 '현안TF'를 꾸리고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증거인멸과 허위증언을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은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가짜 사무실을 차린 뒤 허위 서류를 채워 넣기도 했다.
직제 상 남 전 원장을 바로 아래 위치한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은 지난 7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윗선 지시 여부 등 사법방해 사건의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남 전 원장을 조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