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지 못하고 죽어간 베트남 아기를 위한 자장가

[연꽃 아래에서 평화를 말하다③] 김서경·김운성 조각가 인터뷰

등록 2017.11.14 10:34수정 2017.11.14 10:34
0
원고료로 응원
<연꽃아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로, 가장 낮은 곳에서 진실을 밝히고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기자 말

 제주 강정마을에 세워진 ‘베트남 피에타상’의 모습.
제주 강정마을에 세워진 ‘베트남 피에타상’의 모습.이민주

금방이라도 불어와 뺨을 간질일 듯한 바람과 일렁이는 물. 그 속에는 물소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위로 시선을 옮기면 봉우리 진 연꽃과 각종 나무, 꽃들에 둘러싸인 여인과 아이가 보인다. 아이를 한쪽 팔로 감싸 안은 여인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애처롭다. 그 모습을 위로하는 듯, 여인의 어깨 위에는 나비 한 마리가 앉았다.

위 사진 속 동상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베트남 피에타'(베트남어 이름은 '마지막 자장가')이다. '평화의 소녀상' 제작자로 알려진 김서경·김운성 조각가가 공동으로 제작한 이 동상은 현재 제주 강정마을에 설치돼 있다. 작년 10월에는 베트남 다낭 박물관에, 12월에는 탄타오 시인에게 베트남 피에타상 미니어처를 기증하기도 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라는 두 조각가. 그들이 말하는 평화를 들어봤다.

위령비에 새겨진 무명의 아기들을 기리다

-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의 베트남 피에타상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서경(아래 서): "베트남 평화기행을 가서 수많은 위령비를 봤어요. 위령비에 적힌 학살 피해자 명단에 '0세'가 많았는데 이름 칸에 전부 '아가'라고만 쓰여 있는 거예요. 이름을 짓기도 전에 학살당한 거죠. 호치민에 있는 증적박물관에 갔을 때는 죽어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 옆에서 통곡하는 엄마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봤어요.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눈을 채 다 감지 못하고 우릴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때 죽어간 아기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이의 눈이 편안하게 감기기를 바라는 마음, 수많은 무명 아기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베트남 피에타상을 만들게 된 거죠."

- 베트남 평화기행은 어떻게 다녀오게 되었나요? 이전부터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고 계셨나요?
김운성(아래 운):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것과 전쟁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 그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나비기금'이라는 걸 통해서 아프리카 콩고나 베트남에 있는 여러 상처 받으신 분들을 돕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 '평화기행'이라는 걸 알게 돼서 갔다 왔고요. 다녀와서 우리가 가해한 역사를 알고 사죄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베트남 피에타상 조각 제작을 생각하게 됐죠."

- 베트남 피에타상 속 상징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운: "우선 엄마와 아기의 모습은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 베트남 학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조각했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과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걸 나타내고 싶었죠."


서: "전쟁으로 베트남의 자연도 함께 희생됐잖아요. 조각상 곳곳에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과 베트남의 물, 동물, 물고기, 바람, 새, 나무를 넣어 자연을 위로했어요. 또 그 자연이 아기를 위로하기도 하는 형상이죠. 엄마의 어깨에는 나비가 앉아 있는데 이 나비에는 돌아가신 분들을 함께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동상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들게끔 제작했어요. 학살을 재현하는 식의 자극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알리기 시작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생겨 다가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 엄마와 아이의 작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울림을 주고 싶었습니다."


강정마을에 첫 피에타상을 세운 이유

- 첫 피에타상을 제주 강정마을에 세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운: "원래 첫 피에타상은 베트남에 기증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한국 정부의 거부로 무산됐죠. 무산된 이후에 베트남 대사관 앞에라도 갖다 두고 미안함을 직접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랬다면 반대 세력들이 가만 안 놔뒀겠죠. 그래서 일단 피에타상을 안전하게 세울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제주 강정마을은 전쟁과 해군기지를 반대했던 지역이에요.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도 있고요. 종교가, 그리고 전쟁과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베트남 피에타상을 지켜주고 있어요."

서: "강정에서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평화 집회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강정마을은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곳이죠. 평화에는 국경이 없잖아요. '함께 만드는 평화'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베트남 피에타상을 세운 거예요."

"조각을 통해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 두 분이 제작하신 베트남 피에타상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나요?
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예술 작품과 같은 시각적 이미지가 갖는 큰 힘이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어, 저게 뭐지?' 하고 궁금해하게 되죠. 우리가 소녀상으로 물꼬를 트니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작가들이 많아졌어요. 베트남 피에타상도 그렇게 되리란 희망을 갖고 제작한 거죠.

실제로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베트남 학살 문제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나이 드신 분들은 본인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으로 느끼시기 때문에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들 스스로는 '영웅'이셨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선언 하시는 참전군인 분들도 한두 분씩 생기고 있어요. 그런 분위기를 점차 확장시켜야 하죠. 많은 사람들이 알고 그것이 공유될 때 문제의식이 생기기 때문에, 베트남 피에타상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운: "더 나아가서 베트남 피에타상을 보고 용서를 구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면 점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예요. 지금처럼 '영웅'이라고 정당화하면 결코 해결될 수 없어요. 참전 군인들은 돈을 벌 수 있다니까 총 들고 돈 벌러 간 거예요. 돈이라는 조건이 없었다면 가지 않았겠죠. 결국, 국가가 학살을 조장하고 범죄자를 만들어낸 겁니다.

우리나라는 참전 군인들을 영웅이라 칭하지만, 그 어느 나라에서도 그들을 영웅으로 보지 않아요. 용병으로 보고, 민간인을 학살한 범죄자로 봅니다. 따라서 국가가 나서서 베트남에 사죄하고 참전군인들에게 "당신들도 피해잡니다"라고 말해야 해결돼요. 그런데 국가는 모른 척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베트남 피에타상을 통해서 관심을 모으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많이 만드셨는데, 다른 예술가들도 사회 참여적인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운: "그건 그들 몫이에요. 다른 작가들에게 '너희들은 왜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느냐'고 할 수 없죠. 물론 같이하면 좋겠지만."

서: "저희가 80년대 학번이거든요. 아픈 일이 많이 일어나던 시기에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까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서 조각이라는 매체로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던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외면하는 주제로 작업을 많이 하게 됐죠. 30년이 넘다 보니까 우리에게는 자연스럽지만, 다른 작가들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평화를 새기다

- 두 분이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인가요?
서: "한 외국인 교수님께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평화란 함께하는 거라고. 아픔을 함께하면 치유가 되잖아요. 행복도 함께하면 배가 되고.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게 평화가 아닐까 생각해요. 꽤 괜찮은 대답이었던 것 같은데. 당신은?"

운: "나는 그때 대화라고 했어. 진실한 대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우리가 먼저 얘기하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이 10억 엔 준 것처럼 대충 계산해서 툭 던지듯이 사과하면 안 되죠. 서로 진실한 이야기를 하면 서로 싸우기도 하겠지만, 해결 지점이 나올 거예요. 평화의 시발점은 대화라고 생각해요."

-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연꽃아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운: "연대, 공감과 대화죠."

서: "먼저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해요. 대화도 서로 인정해야지만 가능한 거잖아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성적인 폭행이 쉽게 자행되고 있죠.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동시에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문화 자체를 좀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문화를 바꾼다는 건 거창하고 어렵지만, 소수자를 존중해야 전쟁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인정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우리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고 사람들에게 사과할 것을 강요할 게 아니라, 먼저 우리 일상 속의 잘못된 인식들을 하나하나 바꾸고, 베트남 학살 피해자들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연꽃아래>와 같은 청년들이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해요. 현재 베트남 학살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는 구수정 박사님뿐입니다. 관심 있는 친구들이 계속 함께해서 더 큰 힘이 보태지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운: "오는 12월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어요. 12월 28일이 되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만 2주기가 됩니다. 이 시점에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광장에 빈 의자 300개 정도를 쫙 깔고, 그 자리에 앉아 소녀와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새롭게 다짐하는 거예요. 300명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편지도 쓰고, 공연도 할 계획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너무 많죠. 해야 할 것들이."

서: "일단 베트남에 피에타상을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세우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빨리 만들어지기를 바라요. 또 내년에는 소녀상을 해외에도 많이 세울 계획이에요. 그리고 잊혀가는 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기억하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기억되지 못하거든요.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인물들이 많은데 그중에는 여성도, 어린이도 많이 있을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전부 기억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그들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게 이 역사를 만든 덕에 지금 우리가 있고, 평화가 없으면 역사가 지켜지지 못한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요."

 ‘평화란 진실한 대화다.’, ‘평화란 함께 하는 것이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김운성(왼쪽)?김서경(오른쪽) 조각가.
‘평화란 진실한 대화다.’, ‘평화란 함께 하는 것이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김운성(왼쪽)?김서경(오른쪽) 조각가.연꽃아래

#베트남 피에타상 #김서경 조각가 #김운성 조각가 #연꽃아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본소득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요.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4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5. 5 요즘 MZ가 혼술로 위스키 즐기는 이유, 알았다 요즘 MZ가 혼술로 위스키 즐기는 이유, 알았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