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하는 은유 작가
강민진
지난 10일 저녁,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글쓰기의 최전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등의 저자인 은유 작가가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은유 작가는 그간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청소년 범죄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은유 작가는 "언론에서 '무자비한 청소년', '무서운 10대' 이런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그걸 보면서 억울했고 속상했다"라고 심경을 밝혔고, 사회적 약자가 잘못을 한 사건은 그 집단 전체에 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강의는 많은 부분 은유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만난 여러 청소년들과 그 청소년들이 쓴 글의 내용들을 전하면서, 그리고 청소년을 인터뷰한 자료 등을 소개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는 성폭력 피해 여성 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할 때 가정 폭력, 성폭력 피해자인 청소년이 쓴 시 등을 낭송하며, 언론에 스펙터클하게 전시되지 않을 뿐, 끔찍한 일을 당한 많은 피해자 청소년들이 있으며, 우리 사회의 약자로서 청소년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청소년 범죄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청소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었다.
청소년이 사회적 약자라는 문제에 대해, 은유 작가는 "청소년들은 일상에서 무시당하고 말을 가로채인다"고 설명했다. 발언할 권리를 얻지 못하고, 말을 해도 경청되거나 신뢰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가 소개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청소년의 글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이제 막 성인이 되어 마주할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테니, 투표권이 없는 우리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저 어른들이 멀쩡한 사람을 뽑아 주기만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어리숙한 권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네 또 어른들 흉내 내니? 너희들이 뉴스 볼 시간은 있니? 맨날 페이스북이나 하면서. 확실한 정보도 아닌데 함부로 말하고. 쓸데없는 얘기할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나 더 외워라." 과학 선생님이었다.은유 작가는 또한 자신 역시 "나도 일상에서 청소년을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을 많이 했던 것 같다.라고 자기 반성을 토로했다. 청소년들이 화장을 하는 모습에 문화 충격을 받았던 경험, 딸이 용돈을 한 달마다 일시불로 달라고 했을 때 한 번에 큰 금액을 주면 제대로 못 쓸까 봐 걱정했던 일 등을 이야기하며, "나는 내가 청소년을 똑바로 못 보고 있는 줄도 몰랐다. 청소년을 똑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청소년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주문하며 "청소년을 신뢰할 만한 존재, 그 말을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나 자신을 봐도 그렇게 되는 것이 오래 걸리겠다고 느꼈다"라고 이야기했다.
"청소년에게 '왜 그랬는지' 물어야 한다" 이어서 그는 거리 청소년 등을 인터뷰한 자료를 인용하면서, 청소년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맥락을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청소년들이 폭력을 피해서 거리로 나가게 되는 과정, 제대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없는 여건, 그리고 갈 곳이 없는 현실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하고 싶은 게 딱 하나 있는데, 가출한 청소년들이 배가 고파서 밖에서 뭐 훔쳐서 재판을 받을 때, 처벌을 많이 하기보단 살아갈 수 있는 돈, 집을 구하거나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돈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은유 작가가 짚은 또 다른 주제는, 청소년의 처지와 여성의 처지가 비슷하고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문제의식이 청소년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우리는 집이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라고 기억하지만, 가정 폭력 피해자인 여성이나 청소년에게는 집은 안전한 곳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어서 집으로 가라'고 할 게 아니라, "안전한 갈 곳은 있으세요?"를 먼저 물어야 한다. 청소년의 노동을 '용돈벌이'라고 폄하하는 모습과 여성의 노동을 보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닮은 점도 지적했다.
은유 작가는 강연 말미에는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인용하였다. "우리는 여전히 말할 권리와 신뢰받을 권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두고 씨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글쓰기 수업 경험과 연결해서, 말할 권리와 신뢰받을 권리가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어서, 중년 남성들이 가장 말을 많이 하고 청소년들은 잘 나서지를 못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