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보는 시민들(자료사진)
연합뉴스
처음부터 휴대전화를 안 가졌던 것은 아니다. 십수 년 전 군소 신문사와 잡지사를 전전할 때는 휴대전화기가 필수품이었다. 잠시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휴대전화가 곁에 없으면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두었고, 휴일에도 벨이 울리면 즉각 받아야 했다. 급히 취재할 일이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래서 당시의 기자들은 휴대전화를 '전자 개목걸이'라고 불렀다. 정말 그것은 실시간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족쇄였고 자유 시간마저 구속하는 올가미였다.
전화벨은 항상 급작스럽게 울린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반가운 전화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전화가 더 많았다. 물건을 사라는 광고 전화, 뭔가를 부탁하는 전화,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불쑥 전화를 걸어 전하는 애경사 등은 늘 유쾌하지 않았다. 모르면 안 해도 무방한 일,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안 가도 좋을 장소에 가느라고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 모르고 안 하는 것과 알면서 안 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우리 사회는 뿌리 깊은 연줄 사회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일컬어지는 연줄이 없으면 행세하기도 어렵고 인생살이가 팍팍해진다. 반면에 연줄이 좋으면 세상살이가 술술 풀린다. 서로 아는 사람끼리는 무엇인가를 챙겨주기도 하고 많은 정보도 오고 간다. 좋은 일자리도 구하기 쉽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도 인맥을 통하면 전화 한 통화로 간단히 해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나 좋은 인맥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나도 젊었을 때 인맥이 큰 재산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괜찮은 인맥을 쌓으려고 나름대로 애도 많이 썼다. 이런저런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밥도 사고 술도 사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인맥이 쌓일수록 바빠졌다. 만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술자리도 잦아졌고, 얼굴을 내밀어야 할 행사도 많아졌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몸도 고달팠지만 더 큰 문제는 인맥관리에 들어가는 돈이었다. 밥값과 술값, 경조사 부조금 때문에 얄팍한 월급봉투는 더욱 얄팍해졌다.
술김에 호기롭게 적잖은 술값을 카드로 긁은 후 카드값 청구서를 받고서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각시가 폭발했다. 가계부를 내밀고 조목조목 따지면서 '수입은 쥐꼬리인데 나가는 돈은 깨진 독처럼 줄줄 새니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눈물을 뚝뚝 떨구며 바가지를 긁어대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한바탕 진땀을 빼고서 각시 앞에서 신용카드를 모두 가위로 자르며 약조했다. 용돈 한도에서만 쓰겠다고.
신용카드를 없앤 후 주머니 사정에 맞게 처신할 수밖에 없었다. 술 약속도 최대한 자제했고, 애경사도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깝게 할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이 가려졌다. 될 수 있으면 퇴근 후와 주말에 약속을 잡지 않으니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쓸 시간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소득도 없으면서 늘 바쁘기만 했던 생활이 차분하게 정리되면서 성찰과 사유의 시간이 많아졌다. 곰곰 생각해 보니 휴대전화는 사람을 괜스레 바쁘게 만드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정보화 시대라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정보나 원치 않는 사람과의 통화를 거부할 권리 정도는 있다.
그래서 휴일이면 일부러 휴대전화 전원을 꺼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요한 전화가 올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안했지만 꾹 참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아주 중요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세상일은 척척 잘 돌아갔다.
휴대전화 없는 주말, 세상은 잘 돌아갔다휴대전화 없이 보내는 휴일의 자유를 느끼고부터 아예 휴대전화 없이 지내는 삶을 생각했고, 열심히 그 길을 찾았다. '찾으면 길이 있다'는 것이 내가 삶에서 배운 진리이다. 마침내 대학교재를 전문으로 펴내는 출판사에 일자리를 구한 후 미련 없이 휴대전화를 없앴다. 대학교재 출판사의 편집자는 외부로 나갈 일이 별로 없고 분초를 다투는 일도 아니다.
데스크를 지키며 원고를 검토하고, 교정을 보고, 부서원들의 업무를 지시하고 검토하는 일이 대부분이라서 유선전화로도 충분하다. 외부에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울 때도 미리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은 꼼꼼하게 확인하고 챙기기 때문에 업무에 큰 지장은 없다. 아는 사람들과는 주로 전자메일로 소식을 주고받고, 약속을 정하면 시간이 늦지 않도록 미리미리 서둘러 나가는 습관이 생겼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이 있다. "겨울이 돼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몇 번의 시련을 겪게 되고, 그때 진정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금전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극단적으로 허울 좋은 그 인맥이라는 사람들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민낯을 본다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적당히 거리를 두던 사람에게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경험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법이다. 지금은 불필요한 인맥은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불필요한 인맥에 내 시간과 정신을 소진하기 싫은 것이다. 대신 호감이 가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연락해서 술 한잔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은 오랫동안 겪어 봐야 참모습을 알 수 있다.
인맥은 쌍방향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관계가 오래 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은 나비를 부르지 않아도 나비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가? 인간적인 매력과 향기가 풍겨 나오도록 수양을 쌓는 것도 좋은 인맥을 부르는 능력일 것이다.
휴대전화를 없앤 후로 내가 원하지 않는 분주함은 거의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급한 일이 생길 일도 없고, 타인 때문에 나의 자유를 구속받을 일은 많지 않다. 아주 자연스럽게 껍데기 인맥은 사라지고 알맹이만 남아 단출하면서도 실속이 있다.
물론 휴대전화가 없어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요즈음은 공중전화도 찾아보기 어렵고, 공중전화로 전화해도 모르는 전화번호라서 안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일만 빼면 휴대전화가 없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요즈음은 혼자 있는 사람 대부분이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데이트 중인 연인도 각자 스마트폰에 눈길을 빼앗기거나 열중하고 있는 광경도 흔히 본다. 그들은 잠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세상과 빠르게 소통하며 바쁘게 사는 것일까? 괜한 생각이겠지만, '막상 휴대전화가 없다면 저들은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마치 소중한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할 것이다.
편리함이든 불편함이든, 저마다의 선택이자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