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로자살 문제, 한국과 많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6년 10월 7일 유족인 어머니 다카하시 유키미(高橋幸美)의 기자회견 발표를 통해 덴츠에서 2015년 12월 다카하시 마츠리(高橋まつり)씨의 과로 자살 사건(아래 '2차 덴츠 사건')이 발생하였고, 2016년 9월 노동재해로 인정받았음이 밝혀졌다. 그밖에도 1차 덴츠 사건 이후 2013년 6월 당시 30세의 남성 사원이 과로사한 바 있고, 2014년 6월 간사이 지사가, 그리고 2015년 8월에 본사가 노동기준감독서의 장시간 과중 노동 관련 시정 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입사 1년 차였던 다카하시씨의 2015년 10월~11월 사이 1개월간의 시간외노동은 105시간에 이르렀다. 10월 이후 소속 부서 인원이 14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면서 담당 기업도 늘어났다. 그밖에도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각종 접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맡았고, 회식 후에는 선배 사원에게 늦은 밤까지 지도를 받기도 했다. 11월 들어서는 상사에게 업무를 줄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되려 폭언을 들어야 했다.
'기이한 시간': '자기 신고제'를 통한 덴츠의 시간 기록 조작 덴츠에서 월 100시간을 넘는 잔업으로 고통을 겪은 것은 다카하시씨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30대 중견 사원들도 장시간 과중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 측은 월 잔업시간 상한을 원칙적으로 5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시업 및 종업시간을 신고하고 상사가 승인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다카하시 씨의 유족과 대리인이 산재 승인을 얻기 위해 길게는 월 130시간에 이르기도 했던 다카하시 씨의 잔업 시간을 계산한 방식도 사 측의 자료가 아닌, 건물 입·퇴관 기록 등이었다.
덴츠 사원들은 자신의 근무시간을 직접 관리시스템에 입력하고 1개월분의 근무시간에 대해 관리자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그런데 명목상 규정상의 초과근무 상한을 넘기지 않기 위해 근무기록을 '조작'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었다. 소정근로시간대로라면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하여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할 터인데, 실상은 오전 8시 40분에 출근하여 자정에 퇴근하는 것이었다. 더욱 기이한 사실은 분명 15시간 20분 동안 건물 내에 있었는데, 기록상으로는 기껏해야 1~2시간 초과근무한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해당 노동자는 업무 종료 시간 이후 3~4시간 잔업을 계속하면서 그중 3시간 정도를 '자리 비움'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사 측에서 근무시간을 파악할 때 자리를 비운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렇게 해당 노동자는 밤 9~10시쯤 어떤 이유에서인지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않은 채 '기록상의 퇴근'을 한 후 다시 '기록상으로' 그리고 '사적인 이유로 제 자리로 돌아와' 자정까지 잔업을 하는데, 이 시간은 자기계발 활동 등 개인적인 용무를 본 것으로 기록된다. 일사불란한 조직문화 속에서 암암리에 만연된 근무시간 기록 조작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성과압박과 내부경쟁 심화의 배경덴츠는 오래전부터 일사불란한 조직문화와 더불어 높은 업무 강도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덴츠의 사원 수첩에 적혀 있는 열 가지 수칙(이른바 '귀십칙' 鬼十則)에는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 죽어도 손에서 놓지 말라', '수동적인 인간이 되지 말고 항상 한발 앞서 알아서 움직여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덴츠의 성과압박 및 내부경쟁 강화와 이에 따른 장시간 과중 노동 관행 지속의 배경으로 2001년 이루어진 주식 상장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또한 꼽을 수 있다. 덴츠는 인터넷 광고부문에서 후발주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TV 광고수입의 감소로 인해 2009년 덴츠는 106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덴츠의 경영관리체제는 '사원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 방식으로 변해갔다. 이후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스마트폰 보급과 SNS 이용 증가라는 흐름 속에서 모바일 광고를 핵심으로 한 인터넷 광고의 매출 비중 증가가 약 50%에 이를 정도였다.
다카하시씨도 인터넷 광고 담당 부서에 배치되어 자동차보험 등의 광고를 담당하였으며, 자료 분석 및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문제는 덴츠가 대기업임에도 환경변화에 적응하려 시도하지 않고 중소 영세기업과 같은 노동방식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의 광고와 달리 인터넷 광고는 조회 수 등을 근거로 사후적으로 대금이 지급된다. 인력 충원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덴츠는 업무량 증가의 부담을 기존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광고업계 '괴물'의 탄생과 그 군사적 기원앞서 언급한 '열 가지 수칙'은 어떤 측면에서는 1990년대까지 승승장구를 계속해 왔던 상황을 반영하는 적극적인 사원상(像)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적극적인 수준을 넘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도전정신을 강조하는데, 이는 전쟁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덴츠의 초기 성장 과정과 관련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덴츠는 메이지 시대 말기에 설립된 일본전보통신사를 전신으로 한다. 현재의 사명인 '덴츠'(電通)는 한자로 '전보통신'의 줄임말인 '전통'이다.
일본전보통신사는 아시아 침략전쟁 기간에는 국책회사인 만주국통신사로 이어져 광고 업무 외에 정보기관으로서의 업무, 나아가서는 관동군과 만주국에의 자금조달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전 이후 해체된 만주국통신사는 미점령군(GHQ)과의 밀월관계 하에서 '덴츠'로 복원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 만주철도 직원이나 군 간부 등을 대거 받아들였으며, 전범을 포함한 기존 임원들도 그대로 기용되었다.
현재까지도 덴츠는 정부와 자본의 미디어 길들이기 혹은 '언론통제'의 핵심 고리이다. 덴츠는 광고업계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닌 광고회사인데, 일본 내 전체 광고업계 매출 가운데 덴츠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수준에 이른다. 업계 2위 규모인 하쿠호도(博報堂)의 매출은 덴츠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 미디어의 영향력, 특히 TV 영향력은 막대하다. 덴츠와 하쿠호도 2개사의 매출 가운데 이른바 일본의 '4대 TV 네트워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70%에 이르며 이익 규모로 치면 90%에 달한다. TV의 경우 활자 매체에 비해 광고 의존도가 큰 데다, 광고주 모집의 상당 부분을 덴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덴츠 사건이 드러난 이후 10월 중순경 이시이 나오(石井直) 사장 명의로 사원들에게 한 통의 문서가 배포되었다. 일본의 주간지 <주간현대> 2016년 11월 12일 자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대체로 인사 노무 관리상의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고 개선의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으나, 정부는 물론 미디어로부터도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을 호소하는 듯한 논조 역시 띠고 있다. 덴츠는 정관계 주요 인물들의 자녀가 대거 연고 채용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다른 기업에서 발생하면 화제 될 만한 성희롱 사건 등이 조용히 묻힌 사례도 많다. 덴츠는 광고주와 관련된 스캔들을 무마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종 사건의 무마 의혹이 끊이지 않는 기업이다.
준비된 '역공세'에 대비해야1차 덴츠 사건은 노동성이 노동재해 인정기준 개정에 착수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정신질환에 대한 노동재해 인정 또한 확대되었다. 문제는 사 측의 대응도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관리직으로 하여금 사원 동향을 감시하여 노동재해 발생 시 재판에 이를 경우 제출할 반대증거를 수집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5년 12월부터 의무사항으로 도입 실시된 스트레스 체크 제도와 관련해서도 노동자 개인의 자질이나 건강관리 등의 요인을 부각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2차 덴츠 사건이 보도되고 정부의 과로사방지백서가 발표된 직후, 사 측에서 조직한 학계 등의 인사들에 의해 과로 자살의 원인을 개인화하거나 '기업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식의 논조의 몇몇 언론 투고가 이루어진 것(물론 이들은 덴츠만큼이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역시 사 측이 항시적으로 방어 내지는 '역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2016년 말 이시이 사장은 결국 사임하였으나, 덴츠는 건재하다.
2차 덴츠 사건 이후 덴츠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고, 기존의 노동 관행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왜 하필 과로사방지백서 발표일에 맞추어 2차 덴츠 사건을 공개하고 이후로도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차 덴츠 사건이 여론의 커다란 주목을 얻은 이유는 사망한 다카하시 씨가 '도쿄대 출신'에 갓 졸업한 '신입사원'인 데다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수요자 측 요인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베 정권의 필요라는 공급자 측 요인이 더 커 보인다.
덴츠를 노동개혁의 본보기로 삼아 재계를 길들이고 지지율도 챙기자는 것이다. 덴츠는 건드려도 쓰러지지 않기 때문, 혹은 쓰러지지 않도록 광고주인 정부와 재계가 뒷받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비롯하여 일본 정부는 덴츠에게 안겨줄 광고 일거리가 아주 많다. 최근 근로감독 등이 강화되면서 규모가 작은 편인 외식업계와 IT업계가 자신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울상을 짓는 배경이기도 하다.
역공세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세월호 사고 이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일본은 과로사와 과로 자살 뿐만 아니라 '넷우익'으로도 유명하다. 스스로를 다그치던 다카하시씨는 자살 전 친지들에게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졌다',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살기 위해 일 하는 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겠다', '내일이 올까 두려워 잠을 못 이루겠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니 진심으로 죽고 싶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된 뒤 인터넷 공간에서는 "멘헤라"를 비난하는 혐오성 댓글들 역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멘헤라'란 '정신건강(멘탈 헬스)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로서,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최근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전, 그것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서 과로사 대책위를 구성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과로사 예방센터가 만들어지는 등의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저 앞의 어딘가에 복마전 혹은 지리멸렬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본에서 과로 자살이 '정신건강' 상의 문제를 매개로 한 죽음의 형식으로만 공식적인 재해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과로사와 과로 자살의 노동재해 인정만큼이나 문제를 개인화하는 흐름을 차단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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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자살... 되풀이된 일본 광고회사 덴츠 사원 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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