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러닝머신(트레드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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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니 덥다는 핑계로 헬스클럽에 빠지는 일이 속출했다. 트레이너는 지방을 연소하는 빨리 걷기운동을 하루 1시간만 해도 충분하다고 조언했지만, 등록한 지 1주일도 안 돼 나의 굳은 맹세는 무너지고 있었다. 헬스장 등록만 했다 하면 왜 이렇게 회식이 속출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2주 동안 헬스장을 3번밖에 못 갔는데, 큰 맘 먹고 가려 하면 모임이나 회식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었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일한 후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을 구우며 인생을 논하는 것 또한 삶의 기쁨 중에 하나 아니겠는가. 내가 그랬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따르자니 바삭바삭한 치킨이 울고, 톡 쏘는 소주를 따르자니 시원한 맥주가 먹고 싶다. 이건 '짜장이냐 짬뽕이냐', '비냉이냐 물냉이냐', '족발이냐 보쌈이냐'에 견줄 만한 행복한 갈등이 아닐 수 없다.
헬스클럽을 탈출해 합류한 회식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나름대로 코스가 생겼다. 1차는 삼겹살에 소주, 2차는 노래방 가서 배를 잽싸게 꺼트리고 3차는 치킨에 생맥주다. 지금도 삼겹살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누가 그랬던가. '아침은 신선이, 점심은 사람이, 저녁은 귀신이 먹는 것'이라고 했지만, 헬스클럽 문만 박차고 나오면 그런 말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아침은 축적된 포만감으로 굶고 점심은 대충 끼니만 때우다 저녁엔 또다시 폭식이나 과식하기에 십상이었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니 '천고마비'의 계절이 돌아왔다. 결국, 또다시 2년 전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정작 살을 찌워야 할 말(馬)을 대신해, 회식을 빙자한 기름지고 느끼하고 살찌는 것만 찾아다니는 '고칼로리 하이에나'가 된 것이다.
현재 체중의 10% 정도를 우선 감량 목표로 삼았지만, 어느새 나는 헬스클럽 상위 10% 안에 드는 기부 천사가 되고 말았다. 인사치레로 건넨 '삼겹살에 소주 한잔 오케이?'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콜!"을 외쳐대니, 헬스클럽 3개월 등록비용 60만 원으로 얻은 수확은 겨우 -1kg였다.
'고칼로리 폭주'를 멈춰 세운 두 글자역시 의사의 경고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일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몸에 조금씩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전과 다르게 점점 체중이 더 늘었다.
몸이 무거워지니 조금만 무리를 해도 근력과 관절에 이상이 생겼고 배변습관까지 달라졌다. 게다가 눈까지 침침하고 피부 트러블까지 자주 생겼다. 몇 달 만에 생활습관으로 인한 폐해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에 조금만 유사한 병이 올라와도 온통 내 증상인 것 같고 그 생각만 집착하게 됐다. 결국, 최근에는 검진을 받으라는 건보공단 통지서를 받고도 혹시 무슨 병이라도 나올까 봐 무서워 외면했다.
그러던 11월, 갑자기 가족 중 한 분을 하늘나라로 떠내 보낸 일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삶을 추스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분께서는 가벼운 복통쯤으로 여겨 여러 병원을 거치다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검사 결과, 급작스러운 심혈관계 질환이었고 진단 후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그동안 사는 게 바빠 병원과 거리를 두고 사셨고 몸이 아프면 약에 의존하며 검진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걸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요즘 복무비만을 탈출하기 위한 다이어트의 실천 의지가 약해지니 가족들은 서슴없이 독설을 날린다. 어느새 배불뚝이가 되어 버린 나를 가족들은 '아재'라 쓰고 '영감'이라고 읽는다.
내 복부비만이 위험한 이유는 각종 성인병의 원인인 종합선물세트이기 때문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심장이나 뇌졸중, 심근경색, 당뇨 등 여러 가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