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 전경.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었다. 아래 사진은 지하철 1호선 남영역에서 바라본 모습
민청련동지회
구류 마지막 날인 9월 4일 새벽, 석방을 기다리고 있던 김근태는 전혀 예기치 않게 눈을 가린 채 서부경찰서 뒷마당에 대기한 자동차에 태워져 모처로 압송됐다. 행선지는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이었다. 5층 15호실, 건물 왼쪽 맨 끝 방으로 끌려갔다.
"사방을 둘러보니 짐작할 만 했습니다. 이렇게 낯설고 어색할 수가 없었습니다. 뿌옇던 사방이 점차 빛바랜 황갈색으로 변해가더군요." 그 방에 들어가던 순간을 김근태는 이렇게 기억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간부들이 연이어 체포되고 있었다. 묵과할 수 없었다. 9월 5일 민청련 회원과 가족 30여명이 민청련 사무실에 모였다. '불법 연행된 김근태, 이을호와 구속된 김병곤을 즉각 석방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이틀 뒤에 다시 성명서를 냈다. '거듭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강제 납치행위를 규탄하며 - 김근태, 이을호와 모든 구속된 민주인사의 즉각 석방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경찰은 도리어 더욱 거세게 나왔다. 9월 8일 경찰은 서울 중구 삼각동 합동빌딩 602호에 있던 민청련 사무실에 대해 강제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고문으로 정신이 망가진 이을호
밖에서 민청련 회원들이 항의 농성을 하고 있는 동안에, 체포된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지옥 같은 고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을호 부위원장은 연행되자마자 안전기획부 수사관들에게 다짜고짜 심한 매질을 당했다. 그는 나중에 "무차별 구타를 당한 후 자신이 올빼미로 생각되고 밤새 옥돌을 갈고 있는 환상 속을 헤매었다"고 고백했다. 고통과 공포감이 그의 정신에 상채기를 냈던 것이다.
고문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으로 옮겨 간 뒤에 더욱 혹독해졌다. "물고문과 폭행 등의 물리적 고문과 정신적 고문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급기야 "지렁이도 되고 뱀도 되며 닭 2마리, 돼지 3마리 등의 계속적인 동물 환각 속에 있었다."
연거푸 겪은 물고문 탓에 몸도 망가졌다. "머리를 물에 처박아 숨을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몇 번인지도 기억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변이 안 나왔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변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