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도지침을 제보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지유석
보도지침을 폭로한 <말>지는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10개월에 걸쳐 문공부 홍보정책실이 하달한 사항을 실었다. 이 시기는 정기국회 공전, 개헌 서명운동을 둘러싼 전두환 정권과 야당의 대립, 직선제 개헌, 학생들의 군사독재 비판 시위 등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정통성이 취약한 전두환 정권 입장에서는 불리한 여론은 어떤 식으로든 차단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궁극적으로 사회적 논의의 의제를 통제한 셈이다.
이 보도지침 폭로는 당시 <한국일보> 편집부 김주언 기자가 친구이던 <말>지 김도연 편집장에게 전달한 게 발단이었다. 내부고발의 시선으로 볼 때, 김주언 기자의 행동은 내부고발의 효시라 할 기념비적 행동이었다. 김 기자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을 지냈고, 현재는 내부제보실천운동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지난 19일 김 전 사무총장을 서울 서대문 모처에서 만나 폭로 막전 막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먼저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1987> 이야기부터 끄집어내고자 한다. 영화에서 <동아일보> 편집장이 고문실태 집중취재를 지시하면서 "대학생 한 명이 고문 받다 죽었는데, 보도지침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무조건 들이 받아!"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 당시 감옥에 있었기에 당시 상황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대신 면회 온 지인을 통해 상황을 전해 들을 수는 있었다. <말>지가 폭로한 보도지침은 1986년 8월까지 있었는데, 폭로 이후에도 보도지침은 계속 하달됐다.
1986~1987년 그 시기는 전두환 정권 말기였다. 따라서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않았지만, 일정수준 반발심리는 있었다. 이런 누적된 반발이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밝히게끔 했다.
또 최근에 그 시절 <동아일보> 사회부장을 지냈던 정구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영화에서처럼 데스크가 들이받거나 한 건 아니었다. 보도지침이 칠판에 적혀 있는 것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보도지침이 하달되면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데스크에 배포됐다. 부장들은 이걸 참고해 기사를 고쳐 쓰거나 했다.
그런데 <동아일보> 같이 당시 야당 성향이 강했던 신문들은 보도지침을 다 지키지는 않았다. 한 연구발표에 따르면 제목은 대게 보도지침을 따랐다. 그러나 크게 쓰라는 거나 쓰지 말라는 걸 1단에 쓴다든지, 제목을 살짝 바꾼다든지 하는 식으로 저항했다. 물론 신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방송의 경우는 전혀 저항이 없었다."
- 그 시절과 지금의 <동아일보>는 천양지차 같다. "지금과 1980년대 <동아일보>는 확연히 다르다.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중앙일보>가 1987년 1월15일 치를 통해 가장 먼저 보도했다. 다음 날인 1월 16일 <동아일보>는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한 정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때 이를 보도하지 말라고 지시가 내려왔을 것이다.
당시 기자들이 보도지침을 어기고, 보도하려고 했던 건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기자뿐만 아니라, 데스크, 편집국장의 승낙이 없으면 보도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당시 <동아일보>는 타 신문사와 달랐다고 본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전까지 <동아일보>는 독보적인 야당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야당 성향이 강해졌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많이 바뀌었고, 최근 들어 더 바뀌었다. 의식 있고 비판 정신 강한 기자들이 지속해서 떠난 결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내부고발의 시선으로 볼 때, 보도지침 폭로는 내부고발의 효시라고 보아도 무리는 없다는 판단이다. 보도지침을 제보했다는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것으로 안다. 지금도 내부비리를 폭로한 공익제보자들은 고통을 당하는데, 당시는 말도 못할 정도 아니었나?"많은 사람들이 보도지침을 폭로한 동기를 궁금해한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주위에 많았는데, 졸업 후 이들은 변변한 직업도 가지지 못한 채 재야에서 운동을 이어나갔다.
한편 신문은 제 역할을 못 했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신문은 제도언론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스스로 제도화됐다기보다 폭압적인 통제에 따른 불가항력이었다.
보도지침 내용 속엔 전두환 정권의 반민주적·반민족적·반인권적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실 언론을 통해 민주화해보자 하는 생각이 강했는데,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늘 부채의식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보도지침을 알리자고 마음먹었다."
보도지침, 이명박 전 정권 때 다양한 방식으로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