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취득한 자격증
김덕진
처음 출역 간 정보화교육실의 컴퓨터들은 컴퓨터가 아니라 거의 타자기 수준이었다. 모든 교육생들은 '베네치아'라는 한글 타자 연습 게임을 하면서 모니터 위에서 떨어지는 단어들을 키보드를 두드려 소멸시키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결국 정보화 교육은 타자 교육이었다.
나 역시 겨우 1분에 200타쯤 치던 타자 실력이 의정부 교도소에 와서 400타쯤으로 늘었다. 신기하게도 몇몇 수용자 형님들은 양손 검지손가락만을 이용하는 일명 '독수리타법'으로도 200타가 넘게 나오는 신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정보화 교육 조교를 하는 동안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급하는 공인 자격증인 워드프로세서 3급과 2급 자격증을 땄고, 전국 교정시설 최초로 한국정보통신자격협회에서 발급하는 PC정비사 2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PC 정비사 자격증은 교정시설에서는 2001년 처음 실시했는데, 당시 나를 포함한 동료 8명이 응시해 모두 합격했다.
시험은 협회에서 교도소로 감독관이 출장을 와서 치렀다. 문제집에서 거의 그대로 시험문제가 나오는 필기시험을 통과한 뒤, 하드디스크를 다른 하드디스크로 복사하는 'ghost' 프로그램만 사용할 줄 알면 거의 합격하는 실기시험이었다.
당시 분명 어느 신문에 "의정부 교도소 수용자 김모씨 등 8명 전국 교정시설 최초로 PC정비사 합격"이라는 기사가 났었는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 기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PC정비사협회 회보에 실린 기사 내용만 검색될 뿐이라 몹시 안타깝다.
연거푸 3연속으로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나는 다른 수용자들이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조교로 유명해졌다. 컴퓨터 조교 중 나와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서 병역을 거부해 수감된 친구 단둘만 문신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 여사의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시험 대비 특강을 한 적도 있다. 교도관들도 승진 고과 등을 위해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곤 했는데, 컴퓨터와 친숙하지 않은 현장 근무 교도관들에게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으로 표를 만들고 연산식을 수립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실기시험은 주어진 문서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어 플로피 디스크에 넣어 이름을 쓰고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도저히 시험을 통과하기 어려워 보이던 몇몇 교도관들은 조교들에게 '미션'을 주었다. 우리는 옆방에서 재빨리 문서를 만들어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한 다음, 시험장 컴퓨터에 꽂아 문서를 내려받은 뒤 제출용 플로피 디스크에 다시 옮겨 담아 제출하도록 도왔다.
배우면 뭐하나, 써먹지를 못하는데감빵에는 수없이 많은 출역장이 있다(감방이 맞는 표현이나, 드라마에서 쓰이는 표기 방식대로 감빵이라고 씁니다). 관용부라고 통칭된다. 교도소 곳곳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소지들은 내청과 외청으로 나뉘어 교도소 청소와 관리도 하고 각 사동과 교무과, 의무과, 영치과 등에서 수용자들의 생활을 거든다. 사실 소지들이 없으면 방안에 갇혀있는 수용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유명한 '조폭'(조직폭력배)들도 소지들에게는 잘 해주고는 했다.
또한 3교대로 가스 불을 계속 켜고 쉼 없이 밥을 하는 취사부, 모포 빨래나 기본 지급 물품들을 지급하는 세탁부, 소내 고장 난 것은 무엇이든 고쳐내는 '맥가이버' 영선부, 기본적으로는 수용복을 제작하지만 친해지면 규정을 살짝 어겨 바지에 고무줄도 넣어주고 주머니도 달아주는 양재부, 재소자들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지는 재리부(재소자 이발), 직원들의 휴식과 피로를 담당하는 직리부(직원 이발) 등이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작업 공장들이 있다. 주로 봉투를 붙이거나 비닐장갑을 포장하는 가내수공업 수준의 공장부터 목공, 용접, 원예 등을 통해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수익을 내는 공장들도 있다. 교도소 밖 외부 공장으로 나가 일을 하거나 교도소 소유 목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외부통근(외통)자들도 있다. 의정부 교도소 농장과 공주교도소 고추장 공장 외통은 유명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