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속에서 책 도둑을 가장 실감 나고 재미나게 그린 것은 아마도 고종석 선생이 쓴 <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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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에 나오는 책 도둑은 스스로 '의적'이라고 칭한 만큼 훔친 책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심지어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도서관에 있는 책을 탐내서 훔치는 사람도 제법 많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반납을 하지 않고 액면가로만 변상하고 자기 것으로 소장하는 사람들이다.희귀본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공공도서관은 보물창고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대학도서관은 더욱 그렇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면 분명 요즘에는 거의 구하기 힘든 희귀본이 많을 터이고 도서관 장서인 이 표지에는 없고 내지에만 찍혀 있는 예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것으로 세탁하기가 수월하다. 공공도서관에서 자기가 구하고 싶은 희귀본을 발견하면 일단 대출을 했다가 분실했다며 반납을 하지 않는데 그에 대한 손해 배상보다는 그 희귀본을 소유하는 이익이 훨씬 더 큰 경우가 많다.
그 짓을 한 사람은 어찌 되었던 도서관 장서였다는 흔적을 지우려고 고심을 한다. 면봉에 곰팡이를 없애는 세제를 발라서 도서관 장서인 흔적을 문지르면 감쪽같이 장서인 흔적은 없어지는 요령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도서관이나 서점이 아니고 친구나 지인들이 소장하는 책을 도둑질하는 것은 경우는 어떨까? 이런 경우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다른 사람 집에서 다른 물건을 맘대로 집어가진 않지만, 책은 자연스럽게 들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다시 반납하지도 않을 거면서 '이 책 좀 빌려 갈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친구나 지인의 서재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책을 들고 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책을 빌려 가서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도 많다. 원래 책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사람도 빌려 간 사람이 함부로 책을 사용한 흔적이 있으면 불쾌한 법이다. 하물며 책을 곱게 다루며 읽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책을 빌려주기 싫어한다.
빌려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빌려달라고 고집을 피우면 거절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 책을 빌려 가고 싶으면 띠지를 비롯해서 책에 절대로 손상이 가지 않아야 함은 물론 내지를 한번이라도 접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제시하라.
빌려 달라는 사람이 사는 동네 도서관에서 검색해서 '이 도서관에 이 책이 있으니까 여기에서 빌려'라고 말을 한다.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극약처방으로 '내 책을 빌려 가서읽으려면 모일 모시에 만나서 이 책에 관한 토론을 해야 해'라고 말하면 된다.
물론 본인이 그 책을 읽고 나서 느꼈던 감동이나 공감을 빌려 간 사람이 똑같이 느끼겠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나아가 그 사람이 더 나은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면서 즐겁게 책을 빌려주는 천사도 있다. 또 책을 빌려주었는데 그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해주는 귀한 대출자도 있다.
사족> 책 도둑 이야기가 나오는 고종석 선생이 쓴 <기자들>은 1993년에 출간되었는데 절판이 되었고 책 수집가들이 노리는 표적이 되었다. 고종석 선생은 한국어를 현란하게 사용하는 분이고 <기자들>은 그가 가진 역량이 아낌없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자들>은 그 당시 유럽이 처한 정치 경제적인 이슈와 기자들끼리 주고받는 우정과 로맨스가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2014년 <빠리의 기자들>이란 제목으로 재출간되어서 독자들을 기쁘게 했는데 어쩐 이유인지 이 글에서 인용한 '책 도둑'을 다룬 장이 통째로 빠졌다.
빠리의 기자들
고종석 지음,
새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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