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수여식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임명장

등록 2018.01.28 15:53수정 2018.01.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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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정리하다 예전에 만든 상장이 보였다. 내가 아들에게 준 '착한 아들 상'이다. 아내와 내가 아들 둘을 경주 조카에게 맡기고 집을 며칠 떠났다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준 상이다.


일반적으로 상이란 것은 우등상이나 대회에 나가서 받는 상을 연상한다. 하지만 꼭 그러라는 법은 없다. 엄마 아빠 없이도 누나 말 잘 듣고 무사히 있어준 아들들이 너무 대견하여 상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적어 상으로 주었다.

또한 아이들을 돌보아준 조카에게도 '고마워 상'을 만들어 주었다. 그냥 주면 장난으로 여길 것 같아 깨끗한 옷을 입게 하고 나도 정장을 입고 아이들을 세운 후 상장을 주었다. 아이들과 아내, 조카가 박수를 치며 너무 좋아하였다.

지난 날의 그 상장을 보며 흐뭇해하던 중 문득 '임명장도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우리 부부는 못 하였지만, 결혼하는 신혼부부는 서로에게 남편 임명장, 아내 임명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양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둘만의 연애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을 배경으로 하여

"000을 000의 남편의 자격을 취득하였으므로, 이 임명장을 드립니다."

와 유사한 표현을 담아서. 어렵게, 어렵게 결혼을 하지만 요즘 세태는 너무 쉽게 이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결혼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너무 쉽게 깨어져버린다. 이혼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기 전에 자신이 준 임명장을 본다면 이혼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나의 배우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기념하는 증서를 벽에 붙여두고 매일 본다면, 볼 때마다 '우리는 부부다.'라는 자존감이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여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것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000을 000의 아빠의 자격을 취득하였으므로, 이 임명장을 드립니다."


와 같은 아빠의 임명장은 어떨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빠, 엄마가 된다. 그런데 요즈음 뉴스가 보기 겁이 날 정도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과연 부모의 자격을 갖고 있을까?

아이들을 학대하고 싶어도 이 임명장이 벽에 걸려있다면 부모로서 하지 말아야할 일들을 떠올릴 수도 있으리라. 또한,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빠가 있다면 그 자격증을 보고 아이들을 생각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배우자가 있다면 벽에 걸린 아내 임명장, 남편 임명장을 본다면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봄으로 가정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리라.

아들이 두 명이다. 그 아들이 결혼을 하면 며느리 임명장을 수여하고 싶다. 그리고 아들이 손자를 낳는다면 손자에게도 나의 손자 임명장을 수여할 것이며, 아내에게는 할머니 임명장, 나에게는 할아버지 임명장을 수여할 생각이다.

머릿속에 생각으로 존재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목표를 보고 달리는 것과 목표를 생각만하고 달리는 것과 같다. '꼭 이렇게 임명장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름이라는 것은 왜 필요할까?

이름은 자신의 존재감을 가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누구누구다'라는 존재감. 그것처럼 자신의 위치나 역할에 대한 임명장을 문서로 만들어 벽에 걸어둔다면 자식은 부모에 대해 부모는 자식에 대해 가족 구성원은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해 더 많은 존재감과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사회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한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상장 #임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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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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