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유래한양의 유래를 설명하는 자료
이윤옥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우리말 땅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고문헌 강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대한민국, 한양, 한강에서 '한'이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서울'이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란 것은 알지만 그것이 역사적, 공간적으로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적은 듯합니다. 이미 사라져버린 땅이름을 되찾고 더 이상 아름다운 우리말 땅이름이 사라지지 않길 바랍니다."
9일 오후 2시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강연에는 '우리땅 이름'에 관심을 가진 200여 명의 청중들이 몰려와 강연장을 후끈하게 달궜다. 이날 강연은 사전에 접수한 사람들 우선으로 입장했는데,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회의실 문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평소 '우리말'에 관심이 많았던 기자 역시 일찌감치 신청 접수를 해놓고 이날 강연장을 찾았다. 이날 강연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 당시 "여주군 금사리 행정마을"을 예로 들면서 시작되었다.
"지금 여주에 가면 이포리(梨浦里)라는 마을이 있습니다만 이 이름을 당시 마을 사람들은 '배개'라고 불렀습니다. '배를 대는 개울(물가), 배대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지요. 행정 편의상 이포리(梨浦里)가 되어 버렸지만 한자 표기인 '梨浦里'도 아니고 '이포리'인 바에는 '배를 대던 곳이란 뜻'을 알 길이 없지요. 그렇다고 한자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컨대 예로부터 땅이름이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입말(구전)로 전해오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한자말로 표기하다 보니 본래 땅이름이 지닌 뜻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것이지요."이 연구사는 이해하기 쉽게 '한자 땅이름'에 찌들어 있는 청중을 향해 많은 예를 제시하면서 '우리말 땅이름'이 어느 시기에, 어떤 절차를 거쳐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한자 이름'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지금 상품리, 하품리의 경우도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상품리, 하품리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강사의 질문을 듣고 보니, 냉큼 물건과 관계가 있는 '상품', 졸릴 때 나오는 '하품'을 연상케 하지만 이 땅이름 역시 '웃품실' '아랫품실'로 불렸던 곳이라고 한다. 이것을 상품리(上品里), 하품리(下品里) 식으로 고쳐 놓은 것이다.
그는 이어, 노루와 관련이 있던 노루목이 장항리(獐項里)로, 한밭이 대전(大田)으로, 바깥들 곧 밧들이 외평리(外坪里)로, 여울목이 탄항리(灘項里) 등으로 바뀌어 버린 내력을 설명했다.
탄항리처럼 우리말 여울을 일컫는 이름을 여울 탄(灘)자로 바꿔 놓은 곳이 또 있다. 경기도 연천의 한탄강이다. 지금은 한탄강(漢灘江)이라는 한자로 칠해 놓았지만 원래 이 본뜻은 한(크다), 탄(여울), 강(내)을 뜻하는 '큰여울, 한여울'이었다고 그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