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사선도산에 세워진 성모사, 박혁거세의 어머니 성모와 관련한 설화가 전해진다.
김희태
신라 건국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이주민이라는 추정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성모설화'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한데, 기록에는 박혁거세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선도산의 지선인 성모(신모 혹은 사소부인)인데, 삼국유사는 이와 관련해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송의 사신으로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김부식은 우신관(佑神館)에 있던 여인의 상을 보게 된다. 이때 함께 있던 송나라의 관빈학사 왕보가 여인의 상을 바라보며, 중국 황제의 딸이자 진한으로 건너가 해동의 시조를 낳았다고 했다. 또한 이 여인이 땅의 지선이 되어 선도산에 살았다고 하는 것이 기록의 요지다. 여기에 등장하는 해동의 시조는 박혁거세를 말하며, 선도산의 지선은 성모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의 아들이 알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다분히 설화적 요소일 뿐 실제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박혁거세의 설화와 성모설화를 통해 이주민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라의 건국은 토착세력인 육부촌장의 세력과 이주민 세력으로 대표되는 박혁거세 집단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박혁거세의 능으로 전해진 경주 오릉에 남겨진 이야기이 같은 탄생을 기이하게 여긴 육부촌장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세웠다. 박혁거세 당시의 궁성에 대해 삼국유사는 남산의 서쪽 기슭에 있다고 했는데, '창림사(昌林寺)'라고 말하고 있다.
경주 나정에서 멀지 않은 창림사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궁성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또 하나 관심 있게 지켜볼 내용은 박혁거세의 재위 기간에 있었다는 마한왕과의 갈등이다. 당시 호공을 마한왕에게 보내 예방하게 했지만, 공물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핍박을 당했다.
'후한서 동이열전'의 기록을 보면 한은 세 종족이 있어 마한과 진한, 변진이 있다고 했다. 이 가운데 마한이 가장 크고 그 종족이 함께 진왕을 세워 목지국에 도읍한 것을 알 수 있으며, 기록에 등장하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마한왕은 후한서 동이열전의 진왕을 지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박혁거세의 사로국과 마한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