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청사 1층 내부
임지연
특히 '1937년 7월 일제가 중국 본토를 침략하자, 중국 정부는 11월 수도를 중경으로 이전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또한 창사로 이전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당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중국의 운명과 우리 민족의 운명이 긴밀한 관련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중국은 조선의 독립 운동 세력인 한국 국민당에게 매월 2500원을 지원했으며, 청사와 임시정부 전반을 운영했던 김구 등 독립 운동지사들에게 1932년 9월부터 1941년까지 월평균 5000원을 지원했다고 임시 정부 청사 홍보 영상물은 설명하고 있었다. 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창사에서 활동하는 동안 중국 정부와 후난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받으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는 등의 내용을 적은 문구가 청사 곳곳에 걸려 있다는 점에서 당시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한중 양국의 오랜 역사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영상물 상영이 종료된 이후에는 1층에 설치된 김구 선생의 동상을 확인할 수 있다. 현지 안내인에 따르면 해당 동상은 김구 선생의 후손들과 백범기념사업회에서 제작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이어 2층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이곳을 찾아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각종 현지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그 너머의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중국 인민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그리고 당시 해당 지역의 우두머리였던 당 간부 등의 사진과 실물 크기로 제작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의 홍보물이 전면에 배치돼 있다.
또, 이어진 침실에서는 지난 2009년 중국 정부가 복원한 임시정부 청사 시절 현익철, 지청천 등 독립운동가가 사용했던 좁은 침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밖에도 윤봉길 의사가 친필로 작성했다는 '사내 대장부는 집을 나서면 그 뜻을 다 이루기 전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은 '대장부 출가 생부환'이라는 문구가 벽면에 장식돼 있다.
이어진 전시실에서는 김구 선생과 마오쩌둥이 과거 나눴다는 대화의 일부가 문자화 되어 게재돼 있다. 1945년 9월 3일 두 사람이 나눴다는 해당 대화문에서는 "백범 선생님, 당신의 이름은 제가 징강산 때부터 들었습니다. 일본 사람이 당신을 무서워하고 미워한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적었고, 이어 김구 선생은 "저는 주은래 선생님께 모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사업을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답변했다고 설명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