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행진'에서 핵 폐기물을 운반하고 있는 나와 꼬마들
김지원
무기력한 세대, 무력한 인간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청년들이 무기력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저와 제 친구들에게, 때로는 제가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저는 두해 전까지 대안학교의 목공 강사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수업을 나가면 아이들의 표정이, 행동이 무기력해 보였습니다. 그런 말을 누누이 들어왔기 때문인지, 그 말이 실제로 적합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세상에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20대를 살아보니, 무기력하다는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기력하다"는 말은 곧 "무기력하지 말라"는 말이고, "무기력하지 말라"는 말은 "뭔가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느끼기에 아이들과 청년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무기력한 것은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 어떤 성과나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노력해도 그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우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이 '무기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렴풋이 문제는 사회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세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회가 바뀔까? 그런 질문을 가지며 살다보니, 자연스레 다른 많은 사회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밀양을 알게 되었고, 세월호를 알게 되었고, 쌍용자동차나 강정마을, 또 페미니즘 같은 문제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후쿠시마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무기력한 청년들과 비슷한 신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이 사람들을 안아주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이런 문제들의 책임을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탓으로 만든다는 점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밀양의 할매들과 세월호의 부모들을 보고, 돈 때문에 버티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분명히 문제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발생했는데, 책임을 왜 개인들에게 뒤집어씌울까요? 제가 만난 할매들과 엄마들은 돈 때문에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분들은 당신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비극이 누구에게도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사회가 품지 못하는 개인이 거꾸로 사회를 품으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을 존중하는 사람들마저도 때론 이들을 '무력'하다고 말합니다.
'무기력하다는 것'과 '무력하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보통 '의지가 없어' 아무 것도 안 하려는 것을 '무기력하다' 말하고, '능력이 없어' 못하는 것을 '무력하다' 말합니다. 청년들도 실은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무력한 것입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시도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기력은 그런 과정이 있은 뒤에야, 좌절이 있은 뒤에야 찾아오는 '결과'입니다. 청년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자신들의 무력함을 깨닫는 순간이며,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