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물깍습지동백동산
김흥구
지금은 동백동산을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다 만나는 도틀굴에는 이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굴 입구가 쇠창살로 막혀있어 출입은 불가하다. 선흘곶에서 빠져나와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아담한 학교운동장과 만날 수 있다.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장이다. 운동장 한편에 세워진 오래된 공덕비들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의 뜻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세워진 학교였으나 4.3으로 잠시 폐교가 된다. 이후 무장대 토벌을 위해 군인들이 주둔하며, 마을 사람들이 고초를 겪게 된다.
마을회관을 끼고 마을 한끝 어귀에 가면 독특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팽나무 밑동에 후박나무 가지를 품은 나무다. '불칸낭'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초토화 작전 당시 불에 타버린 팽나무였다. 덩그러니 속이 빈 채로 밑동만 남아있었는데, 어느 날 후박나무가 싹을 틔우며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낙선동은 선흘 본동에서 해안 쪽으로 내려온 알선흘 마을이다. 4.3 유적지 안내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옛 성터에 당시의 전략촌을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마을을 빙 돌아 쌓은 성터 담에 얼기설기 지은 함바집들이 수용소처럼 조성돼 있다. 4.3 당시 선흘 자연부락들이 모두 불타 없어져 버리자, 살 곳이 없던 사람들이 1956년 통행 제한이 풀릴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이즈음 선흘에 가면 붉은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통꽃으로 툭 떨어지는 모습에서 4.3 당시의 서늘한 죽음과 닮아 4.3의 상징이 되어버린 꽃이다. 하얀 눈밭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에서 슬픔을 지울 수 있도록 진상규명의 진실에 성큼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오랜 세월 숨죽인 채 "억울하다"고, "아프다"고 소리도 쳐보지 못한, 북촌리
특별해서 아픈 그날, 북촌리제주의 겨울엔 제사가 참 많다. 그리고 북촌리의 겨울은 더욱, 유독 특별하다. 마치 명절을 지내듯 같은 날 동네 곳곳이 제사를 지낸다. 음력 12월 18일 400여 명의 신위를 같이 올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화공원으로 조성된 너븐숭이 기념관은 아픔이 서린 공간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오랜 세월 숨죽이며 "억울하다"고, "아프다"고 소리도 쳐보지 못한 그런 곳이다. 4.3 진상규명 운동을 통해 알려진 그날의 진실은 참혹했다. 70여 년 전 겨울 무장대에 의해 군인 2명이 살해된 것에 대한 분풀이로 군인들은 북촌리 주민 400여 명을 총살했다. 그리고 그 장소는 집결지였던 북촌초등학교 운동장과 근처의 너븐숭이 그리고 옴팡밭(우묵하게 파진 밭)이었다.
오랜 세월 동네 사람들은 동네 어귀를 지날 때마다 가슴 미어지는 울음을 틀어막으며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젠 버젓이 위령 공간이 조성되고 추모의 공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날의 기억을 전하는 일은 힘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잔혹한 역사의 반복을 없애기 위해 잊지 않으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북촌마을은 제주의 전형적인 농어촌마을이다. 마을 포구까지 가는 길의 구불구불한 올레길과 올망졸망한 밭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날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큰길에 세워진 비석에도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