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만난 오프로드. 아침까지 계속 된 비로 진흙과 물 웅덩이까지 잔뜩 생긴 길이었다.
김강현
내가 맨 앞에서 길을 열면 나머지 사람들이 내 바퀴자국을 따라 오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일행 가운데 물웅덩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노인(70대)이 넘어졌다. 깜짝 놀라 바이크를 세우고 달려가 노인의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고는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기에 다시 출발했지만, 얼마 못가 노인은 넘어지길 반복했다.
바이크 운전 실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바이크여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독일제 고(高)배기량 투어링 바이크였는데, 바이크 무게만 해도 상당한 데다 침낭에 이불까지 살뜰하게 챙긴 짐들도 너무 많았다. 내 바이크와 짐 무게가 200Kg이 넘는데, 내 것보다 훨씬 더 무거운 바이크를 운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노인을 주시하며 이동하다가 넘어지면 달려가 돕고 다시 출발하길 반복했다.
모기와 파리 등, 온갖 벌레들이 날아들어 공격하기도 했다. 몸은 이미 진흙과 땀에 범벅이 됐고, 부츠 안으로는 진흙탕물이 스며들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지도를 보고 근처 도시인 달레네첸스크까지 가는 다른 길을 찾았다.
지도에 표시된 길이 있는 것을 보고 고생하며 들어온 길을 다시 돌아나가기로 했다. 들어올 때처럼 천천히 돌아 나오니 벌써 캄캄한 밤이다. 주변에 아무런 불빛도 없는 도로는 너무나 어두웠다. 바이크의 라이트로는 고작 몇 미터 정도밖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 긴장하며 천천히 달리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일 정도까지 왔다. 대략 30분이면 마을 중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문을 닫은 주유소 가로등 아래에서 잠시 멈춰 쉬기로 했다. 그런데 멈춰보니 일행 중 한 명이 사라졌다. 진흙길을 벗어날 때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어두워서 뒤를 신경 쓰지 않고 달린 결과였다.
깜짝 놀란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금방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한참을 가서야 진흙길 근처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진흙길을 빠져나와 맨 뒤에서 달리다가 차가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갓길에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다친 데가 없고 바이크도 멀쩡했지만, 놀랐고 너무 어두워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를 만난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글이 안되면 그림으로놀란 마음을 충분히 진정하기 위해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달려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여관(Гостиница[가스찌니짜])을 찾기로 했다. 마을을 조금 돌아다니니 불이 켜진 간판이 보여 바로 들어갔다. 숙소에 들어선 시각은 10시가 가까웠다. 방을 잡는 것도 힘들었는데 일행 중 누구도 러시아어를 못하고, 가스찌니짜 직원 중 누구도 영어나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나는 양손을 포개 귀 옆에 붙이고 자는 시늉을 하고 손가락 다섯 개를 펴서 '다섯 명이 자려한다'를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낮에 만난 아이들이 보여줬던 손동작으로 가격을 물었다. 직원은 내 설명을 이해한 듯 뭐라 안내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종이와 펜을 빌려 그림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일행이 다 들어갈 수 있는 큰 방을 잡았고, 가격을 깎는 것도 성공했다.
작은 침대가 세 개, 소파가 두 개 있는 큰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돌아가며 샤워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생각해보니 점심으로 길가에서 먹은 식빵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노인은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어서 그냥 두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 같은 층에 있는 주방으로 갔다. 챙겨온 먹거리는 노인에게 받은 즉석밥과 블라디보스토크 마트에서 산 사각형 컵라면, 그리고 점심에 먹고 남은 소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