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생존철거민들이 24일차 단식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득중 지부장을 만났다.
이원호
2009년 1월 추운 겨울, 강제철거에 맞서 "여기, 사람이 있다"며 건물 옥상에 올랐던 철거민들과 그해 8월 뜨거운 여름,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며 공장 옥상에 올랐던 노동자들은 2009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건물은 철거해도, 우리의 삶은 함부로 철거하지 마라! 철거민도 사람이다. 부수면 그만인 건물이 아니라 여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는 외침들. "우리 노동자도 사람이다. 사용하다 필요 없다고 버려도 되는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란 말이다! 제발 좀 함께 살자!"는 절규들.
"여기, 사람이 있다 - 함께 살자"는 그 처절한 절규가, 2009년 이명박 정권의 국가폭력 살인진압으로 무참히 짓밟히고 학살당했다. 그리고 그 날의 국가폭력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용산의 아픔, 끝나지 않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9년, MB와 자본이 연합한 국가폭력 다시, 2009년 MB시대를 돌아보자. 이명박은 2000년대 초부터 '뉴타운'이라는 이름의 투기판을 벌였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건설자본과 투기꾼을 위한 개발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도심 광역개발이라는 대규모 속도전의 뉴타운 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중산층마저 도심에서 밀어냈다.
용산 일대는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 사업이자 최대의 개발 사기로 끝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의 환각에 휘말렸다. 용산에서 밀려나게 된 이들이,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며 하늘 가까이 올라 버티던 저항은 도심테러로 규정되어 대테러 전담 경찰특공대의 진압에 의해 단 하루 만에 살해당했다. 결국 여섯 명의 국민이 하루아침에 죽었다. 그것은 국가와 자본이 연합한 폭력이자 학살이었다.
2009년 회계조작을 근거로 한 쌍용차 구조조정으로 1600여명에 대한 희망퇴직과 980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통보됐다. 하루아침에 생존을 빼앗겨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며 살기 위해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함께 살기위한 노동자들의 저항 역시, 이명박은 자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섬멸하듯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잔인하게 진압했다.
반년 넘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원통함으로 싸워야 했던 용산유가족들은, 벌건 대낮에 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가 비추는 쌍용차 공장 옥상에서 벌어진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살육을 보며, 컴컴한 망루에서 벌어졌을 살육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날 이후 29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이 삶의 끈을 놓았다. 쌍용차 정리해고와 살인진압 역시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 연합한 국가폭력이자 학살이었다.
이명박이 만든 잔인하고 고약한 인연이명박이 만든 이 잔인하고 고약한 용산과 쌍차의 인연으로, 이들은 10년 동안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의 온갖 싸움을 함께하며 하나가 되었다. 함께 걷고, 함께 농성하고, 함께 비를 맞고, 함께 울었기에, 함께 웃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