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올레 배지를 가득 달고 있는 열혈 올레꾼.
박순옥
몇 해 만에 사량도가 생각났다. 지난 3월 10일 일본 규슈 오이타현 사이키 시에서 오뉴지마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던 때였다. 통영과 사이키, 사량도와 오뉴지마. 묘한 매칭이었다.
사실 사이키 시는 통영과 비교해도 한참 한적한 느낌이 드는 소도시다. 오래된 벚꽃 거리를 걸어도, 다다미 마루에서 일본식 정원을 구경해도 여행자의 감흥은 살아나지 않았다. 그나마 전날에 비해 하늘은 쨍하고 맑았다. 꽃샘 추위에 움츠러든 몸이 조금씩 깨어나는 듯했다.
선착장 근처에는 일 년에 열 번씩 진수식을 한다는 조선소들이 늘어서 있었다. 주말이어서일까. 소금꽃 피어나는 조선소의 시끌벅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저곳에서 배가 만들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갓졌다.
오뉴지마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배 타고 건너가는 데 고작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뭍과 가까운 섬 오뉴지마. 한때는 오천 명이 살았다는, 호리병을 닮은 오뉴지마의 지금 인구는 고작 700명. 그마저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열 명이 모여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고작 다섯 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섬도 사람도 늙어가고 있다.
이 작은 섬 오뉴지마에 규슈 올레 20번째 코스가 들어섰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규슈에는 한국인의 발길이 끊어졌다. 지리적으로 후쿠시마와는 멀리 떨어진 규슈 지역이었지만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검은 물' 쓰나미의 잔상은 그만큼 강력했다.
그때 규슈는 제주올레의 성공에 주목했고, 올레를 수입했다. 지난해 40만 명의 한국인 올레꾼을 불러모을 정도로 규슈올레는 나름의 성취를 거두었다. 규슈의 여러 도시들이 올레길을 유치하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할 정도로 열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뉴지마 사람들의 그 마음을 열성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생기를 잃어가는 섬에는 아마 생존의 문제였으리라. 이날 오뉴지마 코스가 시작하는 캥거루 광장에서 본 장면이 그러했다. 오뉴지마 사람들이 다 모인 듯 광장은 시끌벅적했다.
쌀쌀한 해풍에 악보가 날아갈 정도였지만 고등학교 브라스 밴드는 연주를 쉬지 않았다. 올레 물품을 파는 사람들,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자원봉사자들, 올레꾼들에게 대접할 따뜻한 국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은 섬에 길이 난다는 것에 들썩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섬, 통학로를 살려낸 섬마을 사람들
▲사이키-오뉴지마 올레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좁은 길을 걷는다.
박순옥
▲올레꾼들에게 음료수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대접하는 오뉴지마 사람들.
박순옥
오뉴지마 올레의 백미는 50년 전 섬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오르던 산길 통학로 구간이다. 이 통학로 때문에 오뉴지마는 올레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삼십여 년 전 나는 산 하나를 넘어 학교에 가던 시골마을 아이였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산길을 걸어가야 했다. 지각을 걱정하는 등굣길보다는 놀멍쉬멍 걸을 수 있는 하굣길이 더 스펙타클했다.
찔레 따 먹느라 산을 헤집고 다닌 일은 너무 고전적이어서 시시할 정도다. 받아쓰기 나머지 공부를 하느라 늦었던 걸까. 꼬맹이 혼자서 집에 가게 됐다. 산을 넘어서 말이다. 산길을 걷는 내내 누군가가 계속 발을 잡아끄는 듯했고 부스럭부스럭 짐승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한창 유행하던 <전설의 고향> '내 다리 내놔' 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울렸다. 산꼭대기를 찍고 나면 울울창창한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산 '속'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냅다 뛰었다. 가방 속 도시락에 담긴 수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무서워 무서워. 그날 이후 절대 혼자서는 산속으로 가지 않았다.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는 뚝방길로 돌아갔다.
50년 전 오뉴지마 아이들도 그랬으리라. 누군가는 다리가 풀려 대나무숲에서 구르면서도 뿔 달린 도깨비 '오니'가 무서워 뒤도 돌아보지 못했을 테다. 여럿이서 걸을 때는 노래를 불러제꼈을 거다. 그 시절 우리가 '학교종이 땡땡땡'과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를 개사해 서로를 놀려댔던 것처럼.
하지만 오뉴지마의 통학로도, 고향의 산길도 모두 사라졌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줄어들자 산길 통학로도 무성한 나무에 덮혀갔다.
▲사이키-오뉴지마 올레오뉴지마 올레의 하늘 전망대. 360도 탁 트인 바다가 절경이다.
박순옥
그 통학로 끝에는 하늘전망대가 있다.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나의 통학로와는 달리 이곳에 서니 가슴이 뻥 뚫린다. 여기도 바다, 저기도 바다 360도 회전을 해도 바다 천지다. 맑은 날은 저 멀리 시코쿠까지 보인다고 한다.
지리산을 볼 수 있다던, 사량도 생각이 난다. 지금 사량도는 어떤 모습일까. 통영의 조선소들이 많이 힘들다던데, 통영 거리엔 여전히 외지 관광객들이 많을까. 연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사량도에 들어오고 봄이면 줄을 서서 지리산을 탄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섬에 머물지 않고 산만 타고 밀물처럼 빠져나간다.
오뉴지마는 50년 전 아이들의 길을 살려내 올레꾼들에게 내어주었다. 올레꾼들은 그 길을 걸어줄까. 몇 년 후에도 산길 통학로는 남아있을까. 이 길은 오뉴지마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이제는 그 길을 걸을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달렸다.
[카드뉴스] 일본 규슈올레 17개 코스, 이렇습니다
지쿠호·가와라 코스(규슈올레 21번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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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현 지쿠호·가와라 코스는 1915년 개장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사이도쇼역에서 시간여행을 떠나는 코스. 산과 마을을 번갈아 걷을 수 있는 코스로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을 가까이 혹은 멀리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소 코스가 길고 지루하며 후반의 아스팔트길은 아쉬움으로 느껴진다.
거리 11.8km
소요시간 4~5시간
난이도 중
코스 안내
JR사이도쇼역→ 야야마언덕(1.8km) → 간마부(神間歩)(2.9km) → 60척 철교(6.1km) →칸온지(観音寺) (8.2km) → 큰 녹나무(9.5km) → 가와라신사(10.6km) →JR가와라역(11.8km)
교통편
JR하카타역→<도카이도·산요신칸센 또는 가고시마혼센>→JR고쿠라역→<히타히코센>→JR사이도쇼역
○문의처
가와라마치사무소 산업진흥과 TEL 0947-32-8406
가와라마치관광협회 TEL 0947-85-8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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