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과 강요된 침묵, '울음마저 죄가 되던' 마을

[제주 문화 예술] 제주4.3 학살의 대명사, 북촌리

등록 2018.03.29 14:17수정 2018.03.30 14:20
0
너븐숭이 4.3기념관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기념관조천읍 북촌리강정효

애기 돌무덤 조천읍 북촌리
애기 돌무덤조천읍 북촌리강정효

"교문 쪽에서 총성이 들렸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은 채 싸늘히 식어갔다. 배고파 울던 아기는 죽은 어머니의 젖가슴에 매달려 젖을 빨고 있었다."

군인들이 이렇게 돼지 몰듯 사람들을 몰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 없어 일제사격 총소리가 콩 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길수형도 나도 울었다. 우익인사 가족들도 넋놓고 엉엉 울고 있었다. 우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외양간에 매인 채 불에 타죽는 소 울음소리와 말 울음소리도 처절하게 들려왔다. 중낮부터 시작된 이런 아수라장은 저물녘까지 지긋지긋하게 계속되었다.

- 현기영, <순이 삼촌>, 창작과비평사, 1979.

북촌리는 국제법상 전쟁 중일지라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제노사이드(genocide : 집단학살)의 대표적인 사례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1949년 1월 17일, 4·3 당시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당한 북촌리 주민 대학살 사건. 이 사건은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한 동·서쪽 밭에서 자행됐다.

이날 아침 세화리 주둔 제2연대 3대대의 중대 일부 병력이 대대본부가 있던 함덕리로 가던 도중에 북촌마을 입구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2명의 군인이 숨졌다. 그 후 무장한 군인들이 북촌마을로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총부리를 겨누며 주민들을 전부 학교 운동장으로 내몰고는 온 마을을 불태웠다. 4백여 채의 가옥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젖먹이 강요배 화백
젖먹이강요배 화백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군인들은 군경가족을 나오도록 해서 운동장 서쪽 편으로 따로 분리해 나갔다. 이때 교문 쪽에서 총성이 들렸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은 채 싸늘히 식어갔다. 배고파 울던 아기는 죽은 어머니의 젖가슴에 매달려 젖을 빨고 있었다.

군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 몇십 명씩을 끌고 나가 학교 인근 '당팟'과 '너븐숭이' 일대에서 사살하기 시작했다. 이 학살극은 오후 5시께 대대장의 중지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됐고, 북촌 주민 350여 명이 희생됐다. 이날 희생된 어린아이들의 시신이 묻힌 돌무덤이 지금 북촌리 4.3기념관 옆 속칭 '너븐숭이' 일대에 20여 기가 남아 있다.


이 사건으로 북촌마을은 후손이 끊긴 집안이 적지 않아서 한때 '무남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마다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이 되면 명절과 같은 집단적인 제사를 지내고 있다. 침묵과 금기 그리고 왜곡의 역사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제주4․3의 상징인 조천읍 북촌리.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를 넘어 이제 북촌리는 진실과 화해, 평화와 상생의 새 역사로 나아가고 있다. 정부는 이곳 '너븐숭이' 일대에 국비 약 15억 8천만 원을 들여 위령비와 기념관, 순이삼촌 문학기념비 등을 마련하여 후세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촌리 4․3희생자유족회는 이곳에서 매년 음력 12월 19일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를 엄숙하게 지내고 있다.


'애기돌무덤
앞에서' 
-양영길 시인

북촌 마을에 가면
제주 4․3 때 군인 한두 명 다쳤다고
마을 사람 모두 불러모아
무차별 난사를 했던 총부리의 서슬이
아직도 남아 있는
조천면 북촌 마을에 가면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흙 한 줌 없는 언덕배기에
돌무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직 눈도 떠보지 못한 아기들일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어머니들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들이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나의 눈에는
너무 낯선 이 돌무덤 앞에
목이 메인다
목이 메인다

누가 이 주검을 위해
흙 한 줌을 허락해 주지 않았을까
누가 이 아기의 무덤에
흙 한 줌 뿌릴 시간마저 빼앗아 갔을까
뺏고 빼앗기는 시대였을까

돌무더기 속에서 곱게 삭아내렸을
그 어린 영혼
구천을 떠도는 어린 영혼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용서를 빈다
제발 이 살아 있는 자들을 용서하소서
용서를 빌고 

또 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경훈씨는 시인입니다. 사진을 찍은 강정효씨는 제주민예총 이사장입니다. 제주4.3 범국민위의 4370신문 3호에 실린 글입니다.
#제주4.3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댓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2018년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아픈 역사의 정의로운 청산과 치유를 위해 전국 220여개 단체와 각계 저명인사로 구성된 연대기구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2. 2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3. 3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4. 4 한 박스 만원 안 나오는 샤인머스캣, 농민 '시름' 한 박스 만원 안 나오는 샤인머스캣, 농민 '시름'
  5. 5 국회 앞에서 100명 동시 삭발... 왜? 국회 앞에서 100명 동시 삭발... 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