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미우
만화책 <꽃에게 묻는다>(사소 아키라/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8)를 읽으면서 두 사람을 마주봅니다. 한 사람은 눈을 감고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눈을 뜨고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눈을 감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한 손에 지팡이를 쥡니다. 천천히 걷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안 받습니다. 빨리 가지 않습니다. 곧잘 넘어집니다. 말이 많습니다.
"너도 우산이 없구나. 하지만 다행이야. 오늘은 좋은 비라서." '어. 오늘은 최악이었어. 신발 밑창은 떨어지고, 우산은 없고, 돈도 없고. 좋은 비가 세상에 어디 있어. 있을 리가.' (30∼31쪽)
"뭐가 우는데. 들어 봐." "새야. 새!" "새, 뭐하고 있어?" "그냥 있어! 그냥!" (40쪽)
눈을 뜨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매우 바쁩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벌어야 할 돈도 많습니다. 건사해야 할 식구는 늘 말썽이요, 일터에서는 얼간이 같은 윗사람 때문에 날마다 부아가 치밉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녁한테 벗이 될 사람이란 없고, 모두 싫고 미우며 못 된 사람으로만 보입니다.
눈을 감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비가 오든 말든 우산을 안 받는데, 우산을 쥐면 소리가 막혀서 길을 어림할 수 없다고 해요. 우산이 없어야 소리를 느끼며 길을 찾는다지요. 그런데 이런 삶을 몹시 싫어할 수 있지만, 만화책에 나오는 사내는, 앞을 못 보는 사내는 이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몸이지만, 비를 맞을 적마다 비내음을 맡고 빗물을 핥으면서 맛을 느껴요.
눈을 뜨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듯'하지만, 정작 모든 것을 다 보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이녁을 둘러싼 사람들이 하나같이 밉고 싫고 짜증나고 거북하고 괴롭다 보니, 이 땅에 있는 아름다움이나 기쁨을 하나도 모릅니다. 아니 등돌리지요. 코앞에 아름다운 것이 있어도 그저 내치기 바쁩니다.
"전에도 그랬어. 구해 준 사람은 이름도 밝히지 않고 가더라고. 맹인 친구는 모두 한 번은 플랫폼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는데." "그런 거야?" "다들 그러더라고. 이 세상에는 슈퍼맨이 잔뜩 있다고." (85쪽)
"치하야, 여기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데." "아아. 손질하는 사람이 없어서 잡초가 우거졌지만, 하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어." (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