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보도블럭 - 민들레, 버찌
김태리
벚나무엔 버찌열매가 열리고, 매화나무엔 매실열매가 그리고 복사꽃은 복숭아나무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얼마 전이다. 복사꽃, 매화꽃, 벚꽃의 화형이 도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아 친정엄마한테 매번 물어보곤 한다. 조금 구분할라치면 또 여름 오고 내년이면 또 다시 나는 묻겠지.
시골집 작은 뒷산을 오를 때면 작은 꽃 하나들도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하고,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나물들이 엄마 눈엔 보물찾기 하듯 잘도 찾아졌다. 그걸 보며 나도 어른이 되면 등산길의 풀꽃들, 봄의 새싹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직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을 보니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하루하루가 바쁘긴 한데 그 방향이 어디인지 누굴 위한 건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쁜 것만 같았던 날들이었다. 바쁘게 사는 건 행복한 거라 생각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보내던 도시의 시간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했고, 부지런히 일하다보면 좋을 날 올 거라고도 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다기 보단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열심히 사는 척 하며 살았던 날들이었다. 별일 없이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라며 그 어려운 걸 해낸다며 반복되던 날들을 뒤로 하고 결혼 5년차, 30년 넘게 살았던 고향을 떠나 제주도 서귀포로 옮겨 왔다.
육지보다 잘 마르지 않는 빨래가 섬의 습기를 인지시켜주고,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아볼 수 있었던 인터넷쇼핑은 접속하지 않기로 한 지 오래다.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장단점은 있을 것이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불편한 점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하지만 휴대폰에서 울리는 알람음보다 더 강력한 새소리, 닭소리로 아침이 시작되는 이곳에서의 최대 장점은 모두에게 공평한 24시간의 분침이 조금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천천히 흐르는 이 시계를 등에 업고 오늘은 동네산책을 다녀왔다. 스마트폰의 훌륭한 지도서비스와 함께 혼자서도 씩씩하게 걷고 또 걸었다. 도시에서의 산책과는 다르게 이어폰은 집에 두고 가기로 했다. 간간이 차들이 지나가긴 해도 내 산책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시계의 속도에 맞춰 두 다리의 걸음도, 코를 타고 오는 푸르른 내음도,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결 소리도 천천히 즐기기로 했다. 시선 역시 땅을 실컷 보기도 하고 저 멀리 바다를 보기도 하고 걷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며 최대한 여유를 주기로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쉬다 하다 보니 보도블록을 따라 동글동글 작은 열매들이 뒹굴 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