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5월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긴급 기자회견에서 김동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전무(가운데)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병화 상무, 김 전무, 윤호열 상무. 2018.5.2
연합뉴스
<이투데이> 등의 보도(
삼성바이오, 안진회계법인 '에피스' 평가자료 무단사용 논란)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에는 '삼성물산의 결산목적으로만 쓸 수 있고, 다른 목적으로는 활용할 수 없다'라는 단서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회계법인들이 일반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단서조항을 다는 이유는, 어떤 가정을 쓰느냐에 따라 가치평가결과가 매우 크게 변하기 때문에 가치평가 활용에 대한 제약을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평가 작업은, 특히 DCF(현금흐름할인법)에 의한 가치평가 작업은 매우 주관적인 과정이다. 미래의 매출액, 원가, 할인율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는 매우 크게 변화한다. 실제 회사의 상태와 상관없이 낙관적인 매출증가와 원가절감을 예상하면 기업가치 평가결과가 높게 나오고, 비관적인 매출증가와 원가상승을 예상하면 기업가치 평가결과가 낮게 나온다.
현재까지 매출액이 거의 증가하지 못했고 원가율도 80%를 넘는 회사의 경영진이 앞으로는 매출액이 매년 50% 증가하고 원가율도 60% 이하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하는 미래 손익계산서를 제시하고 이 경우의 기업가치는 얼마가 되느냐고 회계법인에 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그리고 회계법인이 평가업무를 거절할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회계업계 관행상 회계법인이 그러한 가정은 성립하지 않으니 기업가치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답하지 않는다.
대신, 회계법인은 장황한 단서가 붙어 있는 보고서를 준다. 실현 불가능하지만 회사가 제시한 모든 가정이 성립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이 평가결과는 유효하고, 그 전제를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만 이 보고서를 이용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예는 다음과 같다.
"기업가치 평가에 활용된 미래의 매출액과 원가는 회사 경영진이 제시한 자료를 어떠한 형태의 검증절차도 수행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가치평가 결과는 회사 내부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고 제3자가 활용하면 안 됩니다"
"이 가치평가가 도출된 각종 가정과 전제를 확인하지 않은 어떠한 형태의 보고서의 이용결과에 대해 회계법인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회계법인 조차도 그 평가결과를 보장할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의 문구들이다. 다시 말해, 장황한 단서가 달려 있는 기업가치 평가보고서는 그 결과의 활용에 매우 유의해야 함을 의미한다.
위에서 언급된 이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에도 이러한 취지의 문구가 수차례 반복되어 언급되어 있었다. 그러한 단서가 있다면, 에피스의 기업가치가 5.3조 원에 해당한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수치가 도출된 과정이 객관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다면, 그래서 그 평가결과의 활용에 제한이 있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 평가결과를 활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 결과는 신뢰할 수 없어절차적인 측면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평가 내용이 에피스의 경제적 실질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삼성물산이 의뢰한 특정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가치평가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신의 장부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미래의 매출액 증가가 합리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지, 비용구조가 회사의 과거의 추세 또는 협력회사와의 약정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객관적인 사실에만 근거해 볼 때에도 안진회계법인의 가치평가는 기본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오젠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에피스의 바이오 시밀러에 대한 판매수수료는 50%나 된다. 매출에서 관련 비용을 뺀 이익의 50%는 바이오젠 몫인 것이다. 생산도 바이오젠이 하기 때문에, 일정한 생산마진도 바이오젠이 가져가게 된다. 그 밖에 기술료도 지급되도록 되어 있다. 바이오젠이 보유한 원천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기술료가 지급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가구조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반영한다면 에피스가 상당한 매출 실적을 달성해도 영업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 2017년 에피스의 손익계산서가 그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에피스는 2017년에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인 베네팔리의 판매호조에 힘입어 매출액이 3천억 원을 돌파했다. 오리지널 약인 엔브렐의 시장점유율을 20% 이상 잠식할 만큼 판매측면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영업적자규모는 2016년 보다 증가한 천억 원이었다.
사업초기 막대한 규모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되는 바이오기업의 특성상 연구개발비를 자산화하지 않고 모두 비용처리한다면, 장부상 영업적자 규모가 클 수도 있다. 그런데, 에피스의 2017년 무형자산 규모는 5440억 원으로 총 자산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개발비의 상당부분을 자산으로 처리했음에도 대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에피스의 경영진이 가장 잘 예측하고 있었다. 에피스의 경영진은 설립이래로 현재까지 한번도 이월결손금에 대한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한 적이 없었다. 10년 이내에 이익이 발생하여 이월결손금에 대한 세법상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면, 이월결손금에 대한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도 한번도 그렇게 회계처리한 적이 없었다.
이렇듯 안진회계법인의 추정은 바이오젠의 사업보고서와도, 에피스의 이월결손금에 대한 회계처리와도 일치하지 않는 매우 부실한 추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실한 추정이었음은 2017년 에피스의 결산실적에 의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실질의 관점에서도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는 신뢰할 수 없는 부실한 추정결과였다.
안진회계법인의 그대로 쓴다고 해도 지배력 상실은 2014년 이전에 발생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