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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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혁명 이후의 프랑스도 그랬다. 1789년에는 입헌군주제가 등장하고 1792년에는 공화정 체제(제1공화국)가 출현했다. 나폴레옹 군사정변이 벌어진 1799년 이후에는 전제군주제나 다름없는 통령정부와 황제 체제(제1제국)가 연달아 나타났다.
그러다가 1815년에는 예전의 왕정으로 복귀했고, 1848년에는 공화정 체제(제2공화국)로 회귀했다. 1852년에는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에 의해 황제체제(제2제국)로 돌아갔다. 그리고 1871년에는 공화정(제3공화국)으로 복귀했다.
1940년부터 4년간은 전제군주제와 유사한 비시 체제(나치독일 괴뢰정권)가 있었다. 1946년에는 제4공화국, 1958년에는 제5공화국이 출현했다. 실질적 건국이나 다름없는 정치 변화들이 이처럼 수시로 발생했다.
각각의 정치적 단계마다 한국과 프랑스에서는 승자가 개헌을 통해 승리를 공식 확인하는 일이 있었다. 조금 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면 기존 국호를 무시하고 개헌이 아닌 제헌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기존 국호를 그대로 쓰면서 개헌을 통해 승리를 굳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례로, 1987년 6월항쟁에서 이긴 세력은 현행 헌법 제67조 제1항에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선출한다"는 직선제 조항을 넣음으로써 자신들의 승리를 공식 확인했다. 제5공화국이 끝나고 지금의 제6공화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발발 82년 뒤인 1871년부터 공화주의 세력이 굳히기 작업에 들어갔다. 1940~1944년의 예외만 제외하면, 왕정체제나 전제주의로 복귀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1871년의 승자들은 이 기념비적 승리를 법적으로 확인하고자, 헌법적 효력을 갖는 '행정부 수반이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갖기로 하는 1871년 8월 31일의 법률'이라는 긴 명칭을 갖는 규범을 제정했다. 헌법이나 다름없는 이 규범 전문(서문)에서는 "모든 경우에 최고의 결정권은 의회에 있으며"라고 했고, 제1조에서는 "행정부 수반은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가지며"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개헌으로 승리를 굳히기 하는 일이 짧은 기간 계속 되풀이되는 게 한국과 프랑스의 패턴이었다. 이런 패턴을 감안하면, 2017년 이후의 한국 상황은 의외에 속한다. 6월항쟁 30년 뒤에 일어난 지금 촛불혁명 국면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예외적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