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희훈
최근 법조계에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 아니 '발각'됐다.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기에 대법원이 자신들의 숙원 사업이던 상고법원 추진을 위하여 재판을 매개로 청와대와 협상을 한 것이 발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법원 내부의 관점은 사회 일반의 관점과 매우 다른 것 같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그 의견을 듣는다고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 회의에서는 "합리적 근거없이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까지 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판사 사찰은 있어도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사회 일반과 법원 내부의 이와 같은 차이는 재판 거래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재판에 관여한 법관이 그 사건에 관하여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공정성을 상실했고, 특히 공정성 상실 행위가 특정 목적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는 당연히 재판 거래에 해당하는 점 자체에는 일반 사회와 법원 간에 이견이 없다. 사실 이 정도에 이르면 재심사유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면, 즉 3권 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가 "VIP(대통령)과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하는 것은 권한과 재량 범위 내라서 괜찮은가?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에 나온 직접적인 표현으로 "직·간접적으로 VIP와 BH에 힘을 보태왔다"거나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 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온 것은 어떤가?
'사전 교감', '물밑에서 조율',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등의 표현은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다면 사용할 수 없는 표현들이다.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판사들은 위와 같은 사전 교감, 물밑 조율, 돌출 판결 방지 등은 재판거래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광범위한 재판 거래 의심, 충분히 합리적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라고 규정하고 있지, 국정 운영에 협조하며 판결하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상고 법원 도입이라는 재판 거래의 목적도 뚜렷했다. 이것이 재판거래가 아니면 무엇이 재판거래인지 되묻고 싶다.
재판거래 의혹 대상 사건 중 일부 사건(원세훈 국정원장 대선개입 사건, 통진당 지방의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은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를 근거로 보더라도 재판 거래의 명백한 증거가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은 다른 사건들도 광범위한 재판 거래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 충분히 합리적이다.
동일한 당사자(보고서에 언급된 판사들)가 동일한 목적(상고법원 추진 관련 BH지지 확보)을 위하여 동일한 시기에 작성한 동일한 문건이 있는데, 그 중 일부에 대하여 재판거래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다른 일부 내용에 대해서도 재판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위와 같은 자료를 보고도 아무 근거도 대지 않은 채 고위법관들이 "합리적 근거없는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하여 깊은 우려" 운운하면, 그런 법관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우려만 깊어질 뿐이다.
'재판 거래' 최대 피해자는 노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