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CVID'와 'CVIR'

[주장]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혁신 필요

등록 2018.06.19 15:09수정 2018.06.1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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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의 결과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인 것은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정당 지지율의 추이를 감안하면 크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여당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의 고공 행진과 병행하여 진작부터 50%대의 지지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방선거는 총선과 달리 비례대표선거로 선출되는 수가 전체 광역·기초의원의 10% 밖에 안 된다. 이런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40% 이상의 득표율을 얻어도 실제로 차지하는 의석수는 과반의석을 훨씬 넘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방선거의 결과를 보면, 여당의 대승이 예상되었지만 실제 결과가 '쇼크'라 할 만한 경우가 수도권이다. 서울과 경기도는 다른 지방과 달리 특수한 지역적 분위기가 비교적 약한 곳이다. 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와 다당제 하에서 지지율이 50% 넘는 여당 후보에게 야당 후보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애초부터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광역단체장 선거결과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비례대표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사이에 나타난 불균형

 '자유한국당 재건비상행동' 소속의 전직 의원과 당협 위원장 등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홍준표 당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재건비상행동' 소속의 전직 의원과 당협 위원장 등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홍준표 당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이희훈

먼저 서울 특별시의회의 경우 비례대표선거에서 각 정당의 득표율이 더불어 민주당 51%, 자유한국당 26%, 바른미래당 11%, 정의당 10%, 민주평화당 1%였다(소수점 이하 반올림; 아래 동일). 그러나 서울시의회의 의석점유율이 민주당 93%(102석), 자유한국당 5%(6석), 바른미래당 1%(1석), 정의당 1%(1석)으로 나타났다. 한 정당이 수도에서 9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경우는 한국정치사에서도 전무후무할 사건이지만, 세계정치사에서도 매우 희귀한 사례일 것이다.

경기도 의회의 경우 각 당의 비례대표선거 득표율은 민주당 53%, 자유한국당 25%, 바른미래당 8%, 정의당 11%, 민주평화당 0.66% 이었지만, 의석점유율은 민주당 95%(135석), 자유한국당 3%(4석), 정의당 1.4%(2석), 바른미래당 0.7%(1석)이었다.

수도권에서 비례대표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사이의 이런 엄청난 괴리를 설명하는 요인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례대표로 선출되는 의석수가 10%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완전한 비례대표제로 지방선거가 시행되었다면, 서울의 경우 대략 민주당 56석, 자유한국당 29석, 바른미래당 12석, 정의당 11석 정도 되었을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선거의 실제 결과는 야당 전부가 단합을 해도 여당을 견제할 수가 없다. 자유한국당에게는 이번 선거가 총선이 아닌 점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물론 선거제도가 모든 야당의 대참패에 대한 직접적 요인이 아니다. 직접적인 요인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4.27 판문점 선언과 6.13 싱가포르 선언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국민이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얼핏 봐서 덤덤하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급진전된 평화 무드에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연일 '쇼 매들리'로 일관하거나, 드루킹 사건을 기회로 이판사판식의 선거 대반전을 노리거나, 대안 없는 진부한 정권심판론으로만 선거에 임했으니 참패는 불가피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여당의 평화 단독 주도에 대응하여 안보위기의 극복을 위해 거국정부나 대연정을 제안할 전략적 또는 전술적 책략도 없었다. 그런 제안을 여당이 거부했다면, 자유한국당은 이를 명분으로 평화공세의 쓰나미를 조금이라도 비켜나서 선거이슈를 내치·민생 문제로 전환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실업률이 18년 만에 최고치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실업보다 전쟁이 훨씬 더 무섭기 때문에 뚜렷한 대안 없는 자유한국당을 대다수 국민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가 이루지 못한 CVID 달성한 한국당?


그러나 대참패는 여당의 '보수 궤멸'작전의 성공이기 보다는 자유한국당의 자멸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자유한국당 대참패는 자업자득이다. 자멸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김성태 원내대표가 15일 자인했듯이 한국당이 수구·냉전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대참패의 제도적인 이유는 자유한국당이 제20대 총선 직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완전한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줄기차게 반대한 탓이다. 만약 지방선거의 제도가 완전한 비례대표제로 개혁되었다면 자유한국당이 25% 정도의 득표율을 가지고도 수도권 광역의회·기초회의에서 나름대로 견제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존립 여부조차 불투명해진 야당의 초토화 정국을 전망해 보자. 정치권 일각에선 "트럼프가 싱가포르에서 이루지 못한 CVID를 자유한국당이 달성했다"고 빈정거린다. 여기서 CVID란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feat'로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패배란 의미이다. 이러한 완벽한 참패는 자유한국당이 2016년 5월 20대 총선 패배 이후 누차 '뼈를 깎는 각오로' 뭔가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곪은 손톱도 뽑지 못하고 겨우 손톱 깎고 매니큐어를 바르는 모습만 보여준 귀결이다.

'잘못했습니다' 무릎꿇은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잘못했습니다' 무릎꿇은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권우성

김성태 대표의 '깜짝 혁신안'이란 대부분 과거에도 거론되던 내용을 열거할 뿐이고, 구태청산 태스크포스도 무엇이 한 정당의 구태인지 분명히 인식되어야 청산할 수 있다. 외부 인사를 영입해서 비대위 체제가 구성되어도, 과거 경험을 되돌아보면 성공적인 경우가 드물었다. 여야가 각각 경제민주화의 전도사 김종인 전의원을 영입해서 재미를 보았지만, 이후 토사구팽의 줄거리는 잘 알려져 있다. 역사적 대전환기에 직면하여 큰 정당을 혁신할 만한 인물도 드물다. 외부 수혈과 관계 없이 자유한국당이 추진해야할 혁신은 CVIR(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Renovation)이다. CVID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은 CVIR 뿐이다.

'완전한 혁신'이란 당 기본강령의 전면 수정을 포함한 당의 기득권을 인적·물적으로 청산하는 것이다. 서구 정치에서 정당을 쇄신하는 절차는 항상 강령의 수정에서 시작되었다. 보수의 이념적 기반으로 항상 거론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보완도 불가피하다. 탄핵 정국과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의 다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냉전시대의 개념으로 이해할 뿐, 현대적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자유시장경제도 진부한 개념이다. 국내에서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사회적'이란 관형어 때문에 마치 사회민주당의 노선인 것처럼 이해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시장경제는 1950년대 집권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추진한 경제질서였다. 자유한국당이 구태의연한 기본강령에 안주하는 한, 시대적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인적 청산 문제는 당내 분란 때문에 당장 실현될 수 없겠지만, 물적 청산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당의 막대한 재산 때문에 당권 투쟁이 치열하다는 지적도 있다. 천막 당사를 새로 지워봐야 신선미도 없고, 당을 유지할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재산은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해 기부하는 게 상책이다.

다른 시급한 조치는 자문집단의 대폭적인 교체와 확대이다.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명단을 대충 보면 안보·북한 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당 지도부는 이 분야의 정책은 자문그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대체 그런 자문집단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지역구 의원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원래 비례대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다수 포함해야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 일부는 취미생활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상을 준다.

'검증 가능한 혁신'을 위한 방법

'검증 가능한 혁신'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다르게 간단하다. 자유한국당이 스스로 환골탈태한다고 하지만,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여론조사이다. 4분기 별로 정당지지율과 당혁신에 대한 평가를 조사하면 검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가역적인 혁신'이란 당내 수구세력이 개혁 드라이브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제동·반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쉽지 않은 조치이다. 가령 당 강령의 수정 위원회가 외부 인사로 구성되어, 이 위원회가 신강령에 대해 저항하는 집단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대위원장이나 새로 선출되는 당대표가 그런 권한을 가질 수가 있겠지만, 새로운 계파 분쟁으로 흐를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이 이 정도의 CVIR을 할 수 없다면, 앞으로 'CVID비핵화'를 거론할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후자는 전자에 비해 훨씬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한국당이 결국 철저한 개혁에 실패하면 당해체를 하거나 전원 의원직 사퇴를 하든지, 아니면 개헌의 불씨를 되살려 자당의 개헌안에 포함되어 있는 국회해산을 자청하여 국민의 재신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다른 보수·중도 정당이라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지방선거 결과는 너무나 초라해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도 어렵다. 양당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의문이지만, 유지되기 위해서는 역시 CVIR를 추진하고, 다른 당과 합당한 이후에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다만 지난 19대 대선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양당이  당의 생존 전략을 구상이라도 해봤는지 의문스럽다. 한 신문에서  '광역의원 싹쓸이'의 대안으로 지방선거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회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의원 정수의 증가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완전한 비례대표제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총선과 지방선거 모두 소지역구가 없는 단순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의원 정수가 증가하지 않는다. 모든 차원에서 소선거구제는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중소득 이하 출신의 후보가 의회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소선거구제의 폐지가 요청된다.

정의당 등이 가야할 길

민주평화당은 호남지역 밖으로 세력을 확장할 능력과 관심도 없기 때문에 논외로 치고, 사라진 국민의당과 사라질 수도 있는 바른미래당의 간판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존 선거제도로 당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당의 총력을 완전한 비례대표제의 지방선거 도입에 집중하지 않고, 대선 패배증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태만을 보여 주었다.

가끔 비례대표제의 확대나 중대선거구제가 거론되었지만, 중대선거구제는 다수대표제의 변종일 뿐이고 한국에 도입되면 최악의 선거제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선거구제보다 후보들의 정치자금이 더 많이 필요하고, 따라서 정치 부패를 더 조장하기 때문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전체회의 및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전체회의 및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정당 지지율이 9%대를 기록하여 3위를 했다고 자위하지만, 의석 성과 면에서는 광역의원 지역구에서 0석으로 목표치를 언급하기도 민망하다. 기초의원도 목표치의 절반 정도이다.  정당지지율도 대선 이후 한참 동안 6∼7% 대에서 답보하다가 최근 최저임금 개정이 호재가 되어 노동자층의 일부가 민주당에서 정의당으로 이동한 탓으로 간신히 9%대로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이 이번 선거에서 거창하게 내세운 '제1야당(자유한국당) 교체'의 슬로건을 비판할 수는 없으나, 선거전략이나 대선 이후의 행태를 보면 가끔 여권의 제3중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북한·안보정책 분야에서는 도무지 여당과 차별성을 찾기 어려웠고, 정부여당의 허점이 있는 경제·사회정책을 적실히 비판하는 논점이 부족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의당이 여당의 좌우 어느 편에 있는지가 아리송하다. 좌편에 있다고 위치설정을 하면, 비판의 주대상은 수구·보수 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의당은 차기 총선을 위해서는 지난 총선처럼 민주당과 연합공천을 포기하고 독자적인 세력 확대를 위해 개헌의 불씨를 살려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관철하는데 총력을 기울어야 한다. 이 전략의 관철을 위해서는 새로운 개헌동맹을 모색하는 결단도 내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완전한 비례대표제 #지방선거 결과 #환골탈태 #개헌 불씨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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