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습니다' 무릎꿇은 자유한국당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권우성
김성태 대표의 '깜짝 혁신안'이란 대부분 과거에도 거론되던 내용을 열거할 뿐이고, 구태청산 태스크포스도 무엇이 한 정당의 구태인지 분명히 인식되어야 청산할 수 있다. 외부 인사를 영입해서 비대위 체제가 구성되어도, 과거 경험을 되돌아보면 성공적인 경우가 드물었다. 여야가 각각 경제민주화의 전도사 김종인 전의원을 영입해서 재미를 보았지만, 이후 토사구팽의 줄거리는 잘 알려져 있다. 역사적 대전환기에 직면하여 큰 정당을 혁신할 만한 인물도 드물다. 외부 수혈과 관계 없이 자유한국당이 추진해야할 혁신은 CVIR(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Renovation)이다. CVID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은 CVIR 뿐이다.
'완전한 혁신'이란 당 기본강령의 전면 수정을 포함한 당의 기득권을 인적·물적으로 청산하는 것이다. 서구 정치에서 정당을 쇄신하는 절차는 항상 강령의 수정에서 시작되었다. 보수의 이념적 기반으로 항상 거론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보완도 불가피하다. 탄핵 정국과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의 다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냉전시대의 개념으로 이해할 뿐, 현대적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자유시장경제도 진부한 개념이다. 국내에서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사회적'이란 관형어 때문에 마치 사회민주당의 노선인 것처럼 이해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시장경제는 1950년대 집권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추진한 경제질서였다. 자유한국당이 구태의연한 기본강령에 안주하는 한, 시대적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인적 청산 문제는 당내 분란 때문에 당장 실현될 수 없겠지만, 물적 청산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당의 막대한 재산 때문에 당권 투쟁이 치열하다는 지적도 있다. 천막 당사를 새로 지워봐야 신선미도 없고, 당을 유지할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재산은 복지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해 기부하는 게 상책이다.
다른 시급한 조치는 자문집단의 대폭적인 교체와 확대이다.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명단을 대충 보면 안보·북한 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당 지도부는 이 분야의 정책은 자문그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대체 그런 자문집단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지역구 의원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원래 비례대표는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다수 포함해야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 일부는 취미생활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상을 준다.
'검증 가능한 혁신'을 위한 방법 '검증 가능한 혁신'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다르게 간단하다. 자유한국당이 스스로 환골탈태한다고 하지만,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여론조사이다. 4분기 별로 정당지지율과 당혁신에 대한 평가를 조사하면 검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가역적인 혁신'이란 당내 수구세력이 개혁 드라이브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제동·반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쉽지 않은 조치이다. 가령 당 강령의 수정 위원회가 외부 인사로 구성되어, 이 위원회가 신강령에 대해 저항하는 집단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대위원장이나 새로 선출되는 당대표가 그런 권한을 가질 수가 있겠지만, 새로운 계파 분쟁으로 흐를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이 이 정도의 CVIR을 할 수 없다면, 앞으로 'CVID비핵화'를 거론할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후자는 전자에 비해 훨씬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한국당이 결국 철저한 개혁에 실패하면 당해체를 하거나 전원 의원직 사퇴를 하든지, 아니면 개헌의 불씨를 되살려 자당의 개헌안에 포함되어 있는 국회해산을 자청하여 국민의 재신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다른 보수·중도 정당이라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지방선거 결과는 너무나 초라해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도 어렵다. 양당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의문이지만, 유지되기 위해서는 역시 CVIR를 추진하고, 다른 당과 합당한 이후에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다만 지난 19대 대선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양당이 당의 생존 전략을 구상이라도 해봤는지 의문스럽다. 한 신문에서 '광역의원 싹쓸이'의 대안으로 지방선거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회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의원 정수의 증가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완전한 비례대표제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총선과 지방선거 모두 소지역구가 없는 단순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의원 정수가 증가하지 않는다. 모든 차원에서 소선거구제는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중소득 이하 출신의 후보가 의회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소선거구제의 폐지가 요청된다.
정의당 등이 가야할 길 민주평화당은 호남지역 밖으로 세력을 확장할 능력과 관심도 없기 때문에 논외로 치고, 사라진 국민의당과 사라질 수도 있는 바른미래당의 간판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존 선거제도로 당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당의 총력을 완전한 비례대표제의 지방선거 도입에 집중하지 않고, 대선 패배증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태만을 보여 주었다.
가끔 비례대표제의 확대나 중대선거구제가 거론되었지만, 중대선거구제는 다수대표제의 변종일 뿐이고 한국에 도입되면 최악의 선거제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선거구제보다 후보들의 정치자금이 더 많이 필요하고, 따라서 정치 부패를 더 조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