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 본받자는 황당한 이완구, 그게 다가 아니다

[게릴라칼럼] 책임 빠진 채 화합 강조... 보수는 '새는 좌우로 난다'며 읍소

등록 2018.06.26 15:38수정 2018.06.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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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렬하다. 우리 입장에서도 속 시원할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 노동신문의 한 논평이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소셜미디어 상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22일자 "성근한(성실한) 과거청산에 일본의 미래가 있다"는 제목의 논평이다. 짐작하다시피, 이 논평에는 '북일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 중인 아베 정권과 일본을 향한 북한의 통렬한 지적이 담겼다.

노동신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뉴욕 맨하튼 시내 뉴욕한인회관 내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거론하며 "일본이 격변하는 현실에 따라서려면 과거 죄악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무조건 배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노동당 기관지는 "일본은 과거 죄악을 덮어버릴 수도 없고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며 "과거 죄악을 솔직히 인정하고 철저히 배상하는 것만이 일본이 살 길"이라고 에둘러 가지 않았다.

원체 강성 발언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노동신문>의 이러한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패싱'을 우려하며 꼬리를 흔드는 아베 정부에 대한 북한의 정면 대응으로 비춰질 공산이 짙기 때문이다. 더 크게는, 요동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과 과거 '미국 바라기'였던 일본의 외교를 조롱하는 동시에 대일 정책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북한의 강수라고 볼 수도 있겠다.

흥미로운 기사는 또 있었다. 26일 <중앙일보>는 "권력 쏠리고 관료는 기고 야당은 무기력 … 닮은꼴 한·일 정치"라는 도쿄 특파원발 기사에서 최근 지지율을 회복한 아베 정권을 향한 일본 관료사회와 자민당 사이에서 흐르는 '아베 천하' 기류를 꼬집었다.

비록 높은 지지율로 고공비행 중인 문재인 정권과의 어줍지 않은 비교가 담긴 <중앙일보> 특유의 '문재인 비판'을 시전한 기사이긴 했지만, 일본 정치의 일면을 담아낸 현지기사였다. 관료제와 자민당의 장기 집권, 세습제로 얼룩진 후진적인 일본 정치의 일면 말이다.

특히 세습제는 최근 일본 내에서도 문제시 되고 있다.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자민당은 최근 폐쇄적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세습의원을 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세습의원은 '부모나 조부모(친가, 처가, 시댁, 외가 포함) 등 3촌 이내 친족이 국회의원을 역임한 선거구에서 당선된 의원'으로, 지난해 일본 중의원 소선거구에서 자민당에서 당선된 218명 중 세습의원은 72명(33%)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여당이 이 세습의원 후보들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내세우고, 중의원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등 이중 출마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헌데, 이 일본의 정치를 대놓고 '찬양'하는 정치인이 출현했다. 그것도 "공직 44년"과 "정치 24년"이란 자신의 경력을 또 대놓고 강조하면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그 주인공이다.


'정치의 장인화' 부르짖는 '경력 24년' 정치인 이완구 

 이완구 전 국무총리 (자료사진)
이완구 전 국무총리 (자료사진) 남소연

일본인들의 정치 무관심은 실로 유명하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이나 일찌감치 몰락한 진보좌파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세습제 역시 그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청년 정치가 실종된 상황도 거기서 연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주로)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젊은 정치인들의 행태들에 대해 일본인들이 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복합적이고 문제적인 상황이란 얘기다. 지방선거 직후 일본을 다녀왔다는 이완구 전 총리는 그러나 생각이 다른 듯했다.


"제가 44년 공직했는데도 정치를 잘 모르겠는데 이 사람들이 물러나면 누가 정치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사회, 외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참 급해요. 너무 급하고 이런 식인데 일본의 경우는 나카소네 전 수상 아들이 국회의원이고 손자가 국회의원이고 고이즈미 총리 아들이 지금 4기 총리를 준비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정치를 장인화하고 있어요, 장인화. 전문가."

지난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 전 총리는 진행자가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 총선불출마 요구에 대한 견해를 묻자 위와 같이 답했다. 이날 인터뷰가 고 김종필 서거에 관한 주제였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정치의 장인화'라니. 게다가 세습제를 그 '장인화'의 근거로 드는 패착이라니. 자칫 전 국무총리 출신이자 원로급 의원으로서 몰락한 보수야당을 자신이 살리겠다는 충정으로 비춰질 가능성을 내비치는 발언으로 해석되지 않겠는가.

이런 이 전 총리의 관점은 자유한국당의 내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자유한국당 의원 총선 불출마 요구에 "그러면 제가 44년 공직에 있고 24년 정치를 했는데 이를 물러나면 누가 정치합니까?"라고 한 반문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어설픈 '책임' 운운은 '정치의 장인화'를 이룬 일본 정치를 칭찬한 '전문가'가 하기엔 아마추어 수준 그 자체였다.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하고 또 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민들은 아무리 당위성이 있다 하더라도 또 싸우는 야당, 또 싸우는 한국당. 신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두 다 내 책임이다 라는 책임 의식을 가지고 이거 대처를 해야지, 다시 또 연판장 돌리고 너는 안 된다. 그러고 너는 된다 그러고 이거 곤란한 얘기죠.

얼마 전에 초선 의원들이 중진들 책임지고 나가라 했는데 그것도 부질없는 얘기고 또 나가라고 한다고 해서 나가겠다고 하고 출마 안 하겠다는 사람들은 또 무슨 자세입니까? 따라서 그런 수사적인 얘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정말로 겸손한, 정말로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는 그런 자세 하에 아까 말씀드린 보수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재검토하고 그 연후에 당내에서 화합하고 이렇게 가야 됩니다."

화합을 얘기했다. 책임 의식도 언급했다. 국민들이 싸우는 야당은 신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단어만 놓고 보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 정치 경력 24년의 장인이 내놓은 화합에서 정작 진짜 책임의식은 빠진 듯 보인다.

결국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과 별 다를 바 없이 들린다. 비록 '개인'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보수의 정체성만 다시 한 번 재검토"하고 당을 화합해서 재건하면 문제 없을 것이라는 어떤 자위의 수사학.

'70일 국무총리' 경력을 자랑하는, 자유한국당 당 대표 출마가 거론되고 비대위원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이 전 총리. 그의 이러한 훈수는 분명 보수의 몰락과 재건을 근심하는 정치원로의 경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미안하지만, 잘못 짚었다. 사태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한국 정치사에 있어 보수가, 아니 수구와 극우가 이 정도의 위기를 맞은 적은 단언컨대 없었다.

사전 의미 그대로의 '보수'적인 정치가 일정정도 내포될 수밖에 없는 경력 24년의 '정치 장인'의 시각이 이렇게 나이브하다. 문제는, 그러한 의도된 시각이 이 원로만의 경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아니,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시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강조하는 보수야당의 후안무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요즘 자유한국당과 보수야당 의원들이 자주 거론하는 레토릭이라고 알려진 고 리영희 교수의 저서명이다. 25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성원 원내대변인은 이날 바른정당 김관영 신임 원내대표 선출과 관련된 축하 논평을 내며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중앙정치에서 지방정치에 이르기까지 슈퍼 여대야소의 상황속에서 의회의 정부 견제 기능은 유명무실하게 된 형국이다"라고 전했다.

앞서 6.13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로 출마했던 김태호 전 후보 지난 5월 한 토론회에서 같은 논지를 펼치기도 했다. 이런 발언은 어제 또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양 날개가 튼튼해야 잘 나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도 좌, 우, 소위 진보, 보수가 서로 잘 어우러져 균형 있게 갈 때 국가가 발전되고, 국민의 생활이 안정되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같은 날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안상수 비대위 구성준비위원회 위원장이 한 발언 중 일부다. 그러한 '만고의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다니, 애석할 따름이다. 허나 날카로운 지성으로 이념적으로 기울어진 한국 사회를 말과 글로 묘파해낸 시대의 지성이었던 고 리영희 교수가 자신의 논리가 어이없게 쓰이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통찰을 보여줬을까.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만화 <송곳>의 명대사다. 몰락과 추락을 몸소 겪고 있는 보수야당 의원들 입에서 좌우 균형의 중요성이 강조 또 강조되고 있다. 좌우와 진보보수의 균형을 강조하는 저 보수야당 의원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니 보이는 것도 달라진 걸까. 

그러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리 교수의 명제가 중시될 수밖에 없던 시대적 맥락은 거세해 버린 채, 보수의 몰락을 읍소하기 위해 '좌우 균형'이란 수사를 끌어다 쓰는 행태는 '후안무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왼쪽 날개가 해방 이후 어떻게 한국사회를 지탱해왔는지를 돌아본다면 말이다.

그렇게 "보수의 정체성만 다시 한 번 재검토"해도 된다는 이완구 전 총리의 동떨어진 현실인식만큼이나 보수의 재건을 위해 섣부르고 기계적인 좌우의 균형 논리를 앞세우는 것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한국 정치에 있어 '정치의 장인화'가 부를 '보수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균형을 잃고 한 쪽 날개에 힘이 실린 채 날아왔던 지난 10년의 역사가 이를 방증한다. 비단 좌우나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나이브하고 노후된 날개들을 이제는 교체할 때라고 국민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완구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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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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