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 당시 조선에 상륙하는 일본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김민석 논설위원은 청나라가 군대기강 문란 때문에 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들이 이것을 문재인 정부의 운명과 연관 지을 수 있도록 하고자, 기사 끝부분에서 "군의 사기를 꺾고 군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유사시 국민의 자유와 생명의 희생을 예약하는 것"이라는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의 말을 인용한 뒤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 군이 19세기말 청나라군이나 히틀러 시대 독일군처럼 추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 논설위원은 청일전쟁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길하다'는 엄청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데 있다. 제시된 근거가 주제와 맞지도 않을 뿐더러,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부주의나 고의에 의한 오류가 보인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한 진짜 이유
청일전쟁의 승부는 두 나라가 오랫동안 양성한 최정예 해군간의 대결에 의해 판가름 났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군대의 주력은 육군이었다. 그러다가 서양열강이 해군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아프리카를 침략하는 걸 보면서, 청나라와 일본은 서구식 해군 개혁에 착수했다.
그 국방개혁의 성적표가 바로 청일전쟁 결과다. 어느 쪽의 해군 개혁이 더 철저했느냐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 났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일본 해군이 청나라 정예해군인 북양해군을 궤멸시키면서 이 전쟁은 막을 내렸다. 김지훈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발표문과 이창순·김민배·문창극·남재희·이성춘·이종식·신용석·도준호의 토론 내용을 함께 수록한 '중국에서 본 청일전쟁'이란 글은 이렇게 말한다.
"청나라는 지속적으로 해군 건설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됩니다. ······ 일본이 1874년 대만에 개입하자, 청나라가 자극받아 북양해군을 건설한 것입니다. ······ 일본도 북양해군에 대응하는 해군 군비 증강을 하게 됩니다. 반면 북양해군은 더 증강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새로운 군함 구입이 중단되었고 이것이 청일전쟁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2012년 9월 발행된 <관훈저널> 중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 승부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화력(火力)이다. 이 화력을 갖추기 위한 대결에서 청나라는 일본에 졌다. 해군력이 곧 군대의 역량이 된 19세기 후반에 청나라는 해군력 증강을 위한 국방개혁에서 일본에 뒤쳐졌다. 그것이 청일전쟁의 결과로 나타났다.
김민석 논설위원은 군사전문기자와 국방부 대변인을 지냈다. 그런 전문가가 청일전쟁을 좌우한 핵심 요인이 해군력 증강 국방개혁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몰랐다면 처음부터 그런 기사를 쓰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이 되고, 알고도 그렇게 했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방 개혁을 저지하려는 조급함이 앞선 결과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김민석 논설위원의 말대로, 개별 전투에서 나타나는 지휘관의 잘잘못이 승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지휘관의 허위보고나 기강 문란은 패전국뿐 아니라 승전국 군대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기원전 109년에 한나라 무제(한무제)는 위만 고조선을 침공하여 1년 만에 항복을 받았다. 전쟁 중에 한나라군 진영은 적전 분열을 보였다. 순체 장군은 공격을 서두르고, 양복 장군은 협상에 미련을 뒀다. 이 상태에서 한무제가 특사 공손수를 파견했다. 현장 지휘관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체는 공손수와 손잡고 양복을 구금했다. 이를 문제 삼아 한무제는 양복·순체뿐 아니라 공손수에 대해서도 사형을 선고했다. 양복의 경우에는 속죄금을 내고 사면을 받았다.
이처럼 전승국인 한나라군 진영에서도 지휘관들이 분열을 일으키고 황제가 지휘관들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김민석 위원의 말대로라면 이런 군대는 필패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승전국 내부에도 기강문란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김 위원은 청나라군의 기강 해이를 청일전쟁 패배로 곧바로 연결했다. 해군 개혁의 부진이 최대 패인이었다는 사실은 몰랐거나 숨긴 듯하다. 군대 개혁의 부진이 최대 원인이란 사실을 일부러 숨긴 거라면, 숨긴 동기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군대 개혁 부진이 패인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되면, 국방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하기 때문 아닐까?
히틀러의 군대 운명과 대한민국 군대 운명이 같다? 김민석 논설위원은 청나라 사례에 이어 독일 사례를 거론했다. 히틀러의 독일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을 이렇게 정리했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참모부 의견을 묵살하고 기갑부대를 제때 투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허용했고 전세는 독일에 크게 불리하게 기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