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벽에 걸린 벽시계.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사진을 배경을 넣었다.
고양신문
통일의 시대, 평화의 시대를 설계했던 공간몇 가지 궁금증을 짚어보자. 김 대통령은 왜 낯선 신도시 일산으로 이사를 온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난 18일 일산문화공원에서 열린 고양김대중평화문화제 행사에 참석한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김 대통령의 3남)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접경지대로 발전이 더뎠던 일산으로 이사를 하신 까닭은 스스로 북방개척시대를 미리 예견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고양땅은 그에게 민주화 투쟁에 전념했던 정치 인생 전반기와는 결이 다른,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꿈을 보다 원대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구상한 땅이 됐다. 92년 14대 대선에서 3번째 고배를 마신 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보다 준비된 정책과 비전으로 다시 한 번 대선에 도전할 준비를 한 곳. 그리고 마침내 당선의 꿈을 이룬 곳이 바로 고양땅이고 일산이었던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일산으로의 이주는 그의 정치인생 2막을 열어 준 희망과 축복의 땅이 된 셈이다.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동교동 시대를 매듭짓고, 민족화해의 초석을 놓은 통일대통령의 시동을 건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퇴임 후 왜 다시 일산으로 돌아오지 않은 걸까.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당선되니 떠나버린 야속한 이웃'이라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간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건강 때문이었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당선 당시 이미 고령이었고, 자주 신장투석을 해야 했던 김 대통령은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여 단골병원이 가까운 동교동집을 생활하기 편한 구조로 재건축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동네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기쁨을 안겨줬던 대통령 김대중은 고양땅과의 인연을 3년이라는 짧은 시절로 마무리한다.
'반민주 반통일 세력의 역행 막아달라' 유언그는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민족화해의 길을 열기 위해 헌신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꿈꾸었던 평화의 길이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퇴행하는 어두웠던 시절을 목도해야 했다. 김 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 반민주, 반통일 세력의 역행을 막아달라"는 호소를 유언처럼 남기고 2009년 8월 18일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도 시련과 맞닥뜨리는 운명을 벗어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겨울을 이기는 꽃, 인동초라 불렸던 그의 별명처럼 그가 뿌린 민주와 평화의 씨앗은 기적처럼 다시 이 땅에 봄을 가져오고 있다. 재작년 겨울에는 들꽃처럼 연약해 보이는 이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국정농단을 심판했고, 올해 봄부터는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나 손을 잡는 놀라운 역사가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민주와 평화의 기적 같은 회생. 그 배경에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크고 넉넉한 그림자를 본다.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왜곡된 정치 프레임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며 소멸시효를 목전에 둔 지금이야말로 김대중 대통령의 꿈을 재조명하고, 그의 삶이 남긴 역사적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그 작업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바로 고양시일지도 모른다. 그가 한반도 평화의 원대한 구상을 하고, 대통령 당선의 기쁨까지 누린 역사적 장소가 정발산 산기슭 마을에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주인 없이 자리를 지켜온 김대중 일산 사저가 새삼 새롭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