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룩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이준수
아툭은 타룩을 사냥을 떠나는 아빠에게 맡긴다. 언젠가 아툭이 커다란 썰매와 개들을 갖게 되면, 타룩이 단연 대장 역할을 하게 될 터였다. 눈밭 위로 해가 여러 번 뜨고 졌다. 아툭은 끝없이 펼쳐진 눈벌판을 바라보며 타룩을 기다렸다. 그러길 몇 차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개들의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룩이 그만 푸른 늑대한테 물려 죽었단다."
아이들이 "흡!" 하고 숨을 삼켰다. 타룩이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초반부에 덜컥 죽어버려서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J는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눈빛을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슬픔에 잠긴 아툭은 나쁜 늑대를 죽이겠다고 다짐한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타일러 보지만 영혼의 단짝을 잃어버린 아툭은 늑대를 죽이겠다고, 꼭 죽이고 말겠다고 거듭 결심을 굳힌다.
"못된 늑대는 죽어야 해."
가만히 있던 J가 무심하게 아툭의 말을 받았다. 동물 세계에서 인간의 도덕률은 무의미하다. 육식 동물은 배가 고프면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다. 그렇지만 아툭에게 감정 이입한 J에게 푸른 늑대는 용서가 불가능한 악당이었다. 사랑하는 타룩을 빼앗아간 녀석은 오직 죽음으로만 속죄할 수 있었다. 타룩을 잃고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아툭이 어딘가 J와 닮아 보였다.
"아툭아, 네 키는 저 산비탈에 있는 꼬마 자작나무만큼 밖에 안 돼. 아직은 네가 늑대를 죽일 수 없단다."
아툭은 강해지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준비되지 않은 복수심은 처절한 패배로 이어진다. 냉정을 되찾은 어린 사냥꾼은 활과 화살을 들고 툰드라로 나아간다. 카약을 타고 커다란 강의 거친 물살을 헤치는가 하면, 차가운 물속에서 오래도록 헤엄을 치기도 한다. 아툭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걸 깨닫는다.
"추울 텐데 대단하네."
상영이가 아툭이 에스키모족 아이인 걸 기억해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따스한 수영장 물에 익숙한 한국 어린이는 시린 강에서 수영하는 아툭의 몸짓이 놀랍다. 사람이 가슴에 불을 품으면 못할 일이 없다.
아툭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련하는 모습을 J가 봐주길 바랐다. 아툭의 복수가 정당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삶의 태도는 배울 점이었다. 그러나 J는 이 장면에 흥미가 없었다. 교실 바닥을 손톱으로 긁고 냄새 맡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J가 반응하길 바라는 건 담임의 욕심이었고, 아이 의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나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우울에 젖어버리는 J를 볼 때마다 무력감에 빠졌다. 일부러 3, 4 학년 담임교사 연임을 자청했지만 J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인정해야 했다, J는 아툭이 아니었다. J가 계속 바닥을 긁는 사이 아툭은 훌쩍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