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쓴 포스코 노동자들 "삼성도 한다, 우리도 노조하자"

[현장] ‘무노조 경영’ 포스코 노동자, 금속노조 가입보고 기자회견 열어

등록 2018.09.13 13:26수정 2018.09.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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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가입 선언문 읽고 있는 포스코 노동자 포스코 노동자가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에서 금속노조 가입 선언문을 읽고 있다.
금속노조 가입 선언문 읽고 있는 포스코 노동자포스코 노동자가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에서 금속노조 가입 선언문을 읽고 있다.신지수
 
'무노조 경영' 포스코에서 민주노조가 싹틀 수 있을까.

민주노총 금속노동조합은 13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경향신문사 13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 노동자들의 금속노조 가입을 알렸다.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고용노동부에 별도의 노조설립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금속노조 내 지회만 설립하면 되는 것이다. 그마저도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회가 설립돼야 사실상 노조로서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포스코 내 '민주노조' 바람은 지난달 초부터 시작됐다. 포스코 직원 몇 명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했고 그것을 토대로 '포스코의 새로운 노동조합 준비위원회(아래 준비위원회)'가 9월 3일 결성됐다. 준비위원회는 포항·광양 제철소 1만 7000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포스코 노동자는 금속노조 가입 선언문에서 "50년을 이어온 권위주의와 수직적인 기업문화, 가시적인 성과만을 중시하는 성과주의의 악습과 관행들로 인해 창의성은 자취를 감췄다"라며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차별적인 대우가 한계를 넘고 있다"라고 노조 가입 이유를 밝혔다.

포항에서 포스코 노동조합 설립을 돕고 있는 금속노조 포항지부 이상섭 사무국장은 "대한민국 임금 노동자 중 포스코 직원들은 좋은 처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단기·장기 근속자간 임금격차가 심하고 장시간 노동 등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특히 군사적 분위기가 심하다"라며 "일례로 회사 임원이 사내 전산망에 글을 쓰면 직원들이 댓글을 달아야 한다"라고 했다. 만약 댓글을 달지 않으면 상사에게 불려가 '왜 댓글을 안 다느냐'는 말을 들어야 한다. 또 직원들은 봉사활동, 프로축구 등 회사가 주최하는 외부행사에 강제로 동원되기도 했다.

참다못한 포스코 노동자들은 노조를 꾸리기로 했지만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금속노조는 이날 출범 시기를 밝히지 못한 채 "빠른 시일 내 설립할 것"이라고만 했다. 


또 가입보고하는 자리에 참석한 포스코 노동자 9명은 신상 노출 우려로 모두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이들은 출범선언문만 읽었고, 포스코 내부 상황은 이상섭 사무국장이 대신 전달했다. 양기창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아직 지회가 설립 안 됐고, 사측의 노조 탄압 움직임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면 뒤에 숨어 노조 결성을 발표하는 포스코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간의 역사를 보여준다. 1968년 창립 이래 포스코는 사실상 '무노조' 상태였다. 노조 설립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측의 방해로 번번이 무산됐다.


일부 노동자들은 1988년 '포항제철노조'를 결성했지만, 사측은 주택융자금 혜택 제외, 타지역 전출 등으로 가입자들을 탄압했다. 결국 포항제철노조는 3년 만에 와해했됐다. 이후 1997년 세워진 '노경협의회'가 직원들의 임금협상과 근로조건 등을 회사와 협의하며 지금까지 노조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 백지위임을 하거나 회사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등 현장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금속노조 주장이다.

이들은 또 회사의 '노조설립 방해'가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이상섭 사무국장은 "단기근속자들을 중심으로 사측에서 예전에는 없던 회식 등에서 노조 음해 발언을 하고 있다"라며 "회사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는 직원 리스트를 추려서 집중적으로 관리, 면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제보도 받았다"라고 했다. 금속노조는 여기에 맞서 변호사, 노무사, 회계사 등 34명의 법률지원단을 꾸려 포스코 민주노조 설립을 돕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번을 계기로 포스코에 제대로 된 노조가 자리 잡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무노조 경영하는 삼성에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가 만들어진 뒤 수많은 사업장에서 '우리도 노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퍼졌다고 생각한다"라며 "삼성에서도 노조했다. 포스코도 노조하자"라고 외쳤다.

포스코 민주노조 설립을 돕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도 "포스코 노동조합의 민주적인 건설을 통해 무노조 경영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라며 "노조를 와해시키고 무력화시키는 등 부당노동행위, 노조파괴 공작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포스코 #노동조합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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