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뽀로로빵을 구해오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은 죗값은 혹독했습니다. 아이가 드러누웠거든요.
아이코닉스
오늘 아침도 전쟁이었습니다. 늑장 부리다보니 아이들은 눈곱조차 떼지 못했는데 어느덧 시곗바늘은 멀리 가버렸더군요. 대충 요기라도 할 생각에 주섬주섬 어젯밤 산 빵을 꺼냈죠. 웬걸, 첫째 녀석이 대뜸 시위에 들어갔습니다.
"이거 뽀로로빵 아니잖아!"
하루 전 아침, P빵집서 파는 뽀로로빵을 사오기로 했거든요. 하지만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가 들린 곳은 가장 가까운, 캐릭터빵은 없는 일반 제과점이었습니다.
그 전날에도 일반빵을 사온 터라 오늘은 꼭 뽀로로빵을 구해오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어쩔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사정을 말하면 아이가 이해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저는 세 살짜리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랐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죗값은 혹독했습니다. 아이가 드러누웠거든요.
빵 하나를 걸었지만,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큰 약속이었겠죠. 약속의 대상이 빵이 아닌 인생이라면 어떨까요?
192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이춘식 할아버지는 일본의 제철소로 끌려가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일했습니다. 정당한 보상을 받기위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할아버지는 몇 년째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함께 소송을 해온 다른 일제강제징용피해자 3명은 모두 세상을 떴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흘러가는 시간을 헤아리고 있던 게 벌써 5년. 언젠가부터 세상은 그의 소송 앞에 '재판거래'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약자들의 보호자라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본연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저 삶이 걸린 싸움을 끝까지 이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는 30일이 그에게 "나 살아있을 때 좋은 소식 줬다고, 고맙다고 마음 흐뭇한 그런 날"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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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읽기] "진작 끝냈어야 할 일, 너무 오래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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