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이 개인에게 내려 주신 고유한 재능(블루오션)은 접어두고, 외국어나 공무원 시험(레드오션) 준비에 사활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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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상당수가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헬스와 외국어 학원을 등록한다. 20대의 청춘들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학원을 등록하고 10대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원을 누빈다.
경제 전문가들은 레드오션보다는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신이 개인에게 내려 주신 고유한 재능(블루오션)은 접어두고, 외국어나 공무원 시험(레드오션) 준비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불안해서 공부하는 사람들
2002년 월드컵을 앞뒀을 때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날 이후 줄곧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한때는 지인들로부터 영어 작문과 해석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곤 했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맨날 부탁을 하던 한 친구가 외국어 번역기인 '**고'을 언급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친구야! 이제 네 도움 필요 없겠다!"
과거의 외국어 번역기는 정확도가 떨어져 조롱과 희화의 대상이 됐고, 나 역시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친구의 말을 듣고 시험 삼아 영국 파트너에게 보낼 이메일 내용을 번역기에 입력해 봤다. 충격적이었다. 앞으로 몇 년 안
에는 중등 영어 수준만 가진 인력이 인공지능을 등에 업고 나를 대체할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직원이 있다.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다. 과묵하지만 그 자리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낸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남들이 퇴근한 후에는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고 학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하루에 2시간씩 외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날, 그에게 중국어 공부를 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불안해서죠. 뭐라도 해야 하는데 영어 잘하는 사람은 많고, 중국이 또 뜨잖아요. 이제 이직도 어렵고, 창업할 돈도 없고. 답답해서 이거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지만, 한편으로는 슬퍼졌다. 개미지옥 같은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2030세대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고 한다. 40대 이상의 중년이 지금 영어를 시작해서 그들과 경쟁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또한, 중국은 이미 뜬 수준을 넘어서 G2가 되었다. 중국어 능력자들이 차고 넘친다.
'남의 좋음'이 아닌 '나의 좋음'을 위해
과거의 내 경험상 하루에 2시간씩 외국어 공부를 한다고 해도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하루에 2~3시간씩 영어 공부를 해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해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난 거였다. 그곳에서 오로지 영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시간이 지나도 듣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어를 잘하게 된 한 지인의 권유로 톰크루즈가 출연한 <제리 맥과이어>란 영화를 100일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막 없이 보았다. 3개월째가 되니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톰 형의 목소리만 들어도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한국의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거실에 켜 놓은 CNN 뉴스가 다 들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외국어로 취업을 하거나 이직을 노린다면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외국어 공부의 목표가 단순한 취미나 즐거움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단지 불안하다는 이유로 막대한 시간과 돈을 여기에 투자한다면 엄청난 기회비용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제는 외국에서 10년 정도 살다 온 수준의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면, 필자 수준의 외국어 능력은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대신 할 것이다. 입사를 위해서는 영어 공부가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원어민 수준이 아닌 이상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내 수준 정도는 인공지능이 대신할 날이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