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의열단 창단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 42회] 의열(義烈) 투쟁은 독립운동 방법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투쟁노선

등록 2018.11.02 16:35수정 2020.07.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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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촬영한 의열단원들의 모습
해방 후 촬영한 의열단원들의 모습국가보훈처
 
국치 이후 우리 독립운동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 의열(義烈) 투쟁은 수많은 독립운동 방법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투쟁노선이었다.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많은 효과를 올린 것이 의열투쟁이다. 또 수단과 방법, 시간과 장소, 인물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방략이었다.

외침과 내우가 유난히 심한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의열의 전통이 이어져왔다. '의열'이란 흔히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를 가리키거나 그들의 특징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국난기에 관군이 일패도지하거나 적군에 투항할 때 민간인(백성)들이 궐기하여 침략자들과 싸워서, 이를 물리치거나 전세를 바꾼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장렬한 자기 희생이 따랐다. 

임진 · 정유왜란 때에 의열투쟁이 강력한 저항의 모습을 보였고, 한말 일제침략기에도 수많은 의열사들이 궐기하여 의병전쟁(義兵戰爭)에 참가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일신을 던지는 단독 의열전을 전개하였다.

1970, 80년대 반독재 민주항쟁 과정에서도 수많은 재야인사ㆍ학생ㆍ노동자가 투신ㆍ분신ㆍ할복ㆍ고문사ㆍ의문사 등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의열투쟁은 정규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사의 의열투쟁이 최근 세계 각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테러와 다른 것은 국권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의의 실현방법이어서, 자신을 던지는 지극히 도덕적 수단의 목표 축에 있었다는 점이다.

한말 일제침략세력과 맞서 싸운 민간병(民間兵)을 의병이라 한 것이나 의열단의 경우,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 는 공약 제1조에서 제시한 '정의'의 가치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의열단과 김원봉 단장을 다룬 신문기사.<약산 김원봉 평전> 발췌
의열단과 김원봉 단장을 다룬 신문기사.<약산 김원봉 평전> 발췌 오나이뉴스 심규상
 
일제는 의열단의 존재가 얼마나 공포심을 불러온 대상이었던지 일본 외무대신은 "김원봉 체포시 즉각 나가사키(長崎) 형무소로 이송할 것이며, 소요경비는 외무성에서 직접 지출할 것" 이라는 요지의 훈령을 상하이 총영사관에 하달하기에 이르렀다. (주석 1)


또한 1920년대 전반기 의열단의 투쟁역량에 대해 조선공산당은 1926년 3월 코민테른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민족혁명전선에서 직접 투쟁하는 단체는 의열단 · 신민부 · 통의부 밖에 없다." (주석 2) 라는 평가도 있었다. 
 
 조선의열단 단원들. <약산 김원봉 평전>에서 발췌
조선의열단 단원들. <약산 김원봉 평전>에서 발췌오마이뉴스 심규상
 
의열단과 관련하여 한 연구자가 밝힌 다음과 같은 사례도 주목되는 내용이다.

의열단의 활동으로 인하여 조선국내에는 웃지못할 사건까지 발생하곤 하였다고 합니다. 강도들이 재물을 빼앗으면서 "나는 의열단원인데 군자금으로 가져가니 그리알아라" 했던 사건이 있는가 하면, 충청도 어디에서는 경찰이 좀도둑을 잡아 경찰서에 데려다 앉혀놨더니 이놈이 글쎄 "나는 의열단이다" 하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자 순경들이 놀라 도망을 갔다는 얘기까지 당시 신문에 보도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주석 3)


일제 군경과 관리들에게 의열단원은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언제 어디서 의열단원이 불쑥 나타나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들이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렵기는 친일파와 악질 지주들도 마찬가지였다 .

의열단은 1920, 30년대의 수다한 민족운동 단체들 가운데 임시정부를 제외하고는 그 활동기간이 가장 길었던 단체이기도하다. 그 기간동안 의열단은 일제 식민지배를 전면 거부하는 투쟁을 통하여 시기별로 독특한 운동노선과 행동모델을 구해냈다.

흔히 '의열투쟁'으로 일컬어진 소집단 폭렬투쟁(爆裂鬪爭, '테러투쟁') 을 비롯하여, 정규 군사조직에 의한 무력항쟁, 노동대중 조직화에 기초한 민중총봉기 및 유격전 등을 그때그때 시의적절하게 기획하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의열단의 운동행로는 기본적으로 민중혁명 방식의 민족혁명을 지향한 것으로, 전체 민족운동의 발전 경로에도 뚜렷한 행적을 남겼다. (주석 4)

주석
1> 김광주, <상해시절회상기> 上, <세대>, 1965년 12월호, 257쪽.
2> 스칼라피노 · 이정식 지음, 한홍구 옮김, <한국공산주의운동사> 1, 146~147쪽, 돌베개, 1986.
3> 염인호, <김원봉과 무정>, <인물로 보는 항일무장투쟁사>, 136쪽, 역사비평사, 1995.
4> 김영범, <한국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29쪽. 창작과 비평사, 1997.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의열단 #의열투쟁 #김원봉 #박재혁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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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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