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촬영한 의열단원들의 모습
국가보훈처
국치 이후 우리 독립운동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 의열(義烈) 투쟁은 수많은 독립운동 방법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투쟁노선이었다.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많은 효과를 올린 것이 의열투쟁이다. 또 수단과 방법, 시간과 장소, 인물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방략이었다.
외침과 내우가 유난히 심한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의열의 전통이 이어져왔다. '의열'이란 흔히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를 가리키거나 그들의 특징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국난기에 관군이 일패도지하거나 적군에 투항할 때 민간인(백성)들이 궐기하여 침략자들과 싸워서, 이를 물리치거나 전세를 바꾼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장렬한 자기 희생이 따랐다.
임진 · 정유왜란 때에 의열투쟁이 강력한 저항의 모습을 보였고, 한말 일제침략기에도 수많은 의열사들이 궐기하여 의병전쟁(義兵戰爭)에 참가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일신을 던지는 단독 의열전을 전개하였다.
1970, 80년대 반독재 민주항쟁 과정에서도 수많은 재야인사ㆍ학생ㆍ노동자가 투신ㆍ분신ㆍ할복ㆍ고문사ㆍ의문사 등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의열투쟁은 정규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사의 의열투쟁이 최근 세계 각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테러와 다른 것은 국권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의의 실현방법이어서, 자신을 던지는 지극히 도덕적 수단의 목표 축에 있었다는 점이다.
한말 일제침략세력과 맞서 싸운 민간병(民間兵)을 의병이라 한 것이나 의열단의 경우,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 는 공약 제1조에서 제시한 '정의'의 가치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