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일을 하면 내 청춘이 갈리는 느낌이었다. 더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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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바꿔도, 나는 계속해서 2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았다. 세금을 빼고 월세와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겨우 마이너스만 면할 수 있던 수준이었다. 그런 내게 사장은 "요즘 애들은 힘든 일도 안 하려 하고, 진득하게 한 곳에서 경력을 쌓으려는 노력을 안 한다. 그러면서 실업률이 높니, 일자리가 없니 불평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편집과 글 작성 등이 주 업무인 사무직들에게 코딩을 배워서 해보라는 무리한 주문을 했다. 또 청소를 외주업체가 아닌 직원들에게 시킨다거나, 외근을 보내며 교통비는 본인이 부담하게 한다거나,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딱 맞춰 근무하면 눈치를 주고 훈계하는 부당한 '꼰대'짓도 했다. 그러면서도 신입들이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떠나는 것을 그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일자리의 질이나 업무 강도와는 상관없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게 더 중요했던, 배고픈 세대였다. 젊음을 소모하면서도 그게 다 사서 하는 고생이라 여겼을 세대였다.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안다. 존경해마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변했는데도 잘못된 구습을 또 다시 계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청년들이 회사를 떠나고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지나치게 일에 치중해 젊음을 소모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고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게 현 2030세대들이다. 수많은 회사의 현실은 아직 여기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공시생'은 젊음을 소모당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의 마지막 발악인 셈이다. 청년들이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시생은 청년들의 마지막 발악
그래서 정부의 청년일자리 정책이 다소 아쉽다. 절대적으로 '일할 자리'가 늘어야한다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재정을 투입해 청년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규모를 늘리는 식으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룬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건 바로 여러분의 젊음"이라고 말한다. 현실은 이 말을 우습게 만든다.
극악한 고용시장을 거치고 친구들과 고민을 공유하며 느꼈다. 타인의 젊음에 대해, 젊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든 소모되어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은 곳곳에 넘쳐난다. 그들의 "젊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젊음이 좋은 것은, 젊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다. 생애 동안 가장 튼튼한 체력을 가지고 있을 시간이라 이곳저곳 누비며 여행을 다닐 수 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친구들과 밤을 새워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 수많은 청사진을 그려보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과 알아가고, 수많은 사랑과 이별을 겪어보는 등 여러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많은 '젊음이 좋은' 이유들은 대개 여윳돈과 시간이 없으면 누릴 수 없다. 뼈아픈 현실이다.
내가 근무했던 구로디지털단지역에는 수많은 회사들이 모여 있는데 저녁 8시, 9시가 훌쩍 넘어도 불빛이 환해서 야경이 아름다웠다. 그 불빛 아래에서 젊음을 소모당하고 있는 이들이 오늘도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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