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타이틀
배경은 논바이너리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여행자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
- 여행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헤일러 "여행자는 2015년 9월 6일 정식 출범했다. 만들어진 계기는 같은 해 7월 사회 관계망 서비스인 트위터에서 자신을 젠더퀴어로 생각하는 4명이 만나면서 시작됐다.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있어서 피켓을 만들고 행진도 하면서 활동이 이어지게 됐다."
도균 "현재는 '젠더 여행자'라는 여행자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즉흥연기 워크숍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수다회, 당사자 자조 모임을 운영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소책자 제작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 여행자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헤일러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젠더 여행자라는 말에서 따온 듯 하다. '젠더 세계는 넓으니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지은 것 같다."
도균 "저는 여행자 앞에 붙는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갖는 의미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 단체를 트랜스젠더 당사자 단체라고만 생각한다.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 억압, 어려움 등을 개인이 겪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우리는 성별이분법이라는 단어를 통해 '단순히 트렌스젠더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회를 둘러싼 차별과 억압에 저항한다'고 말하고 싶다."
-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도균 "여행자는 18일 일요일에 홈파티를 개최한다. 떠나간 사람들을 추모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번에 '넋전'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넋전'은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할 때 무당집이나 절에서 사용하던 종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종이 인형을 말한다. 넋전, 만장이 한국 제례에서 사용되는 도구들인데 이것을 트랜스젠더의 맥락에서 해 보려고 한다."
헤일러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회원들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하지 않는 선에서 심리적 안정까지 제공하는 형태를 고민 중이다. 떠나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서로를 지지하는 것에 방점을 찍으려고 한다."
남·여로만 나누어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
- 대부분 사람은 성별이분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활동가로 생각하기에 이러한 이분법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쁨 "성별이분법은 사실 모든 악의 근원이다. 성별이분법이란 성별이 남자와 여자로만 나누어져 둘 사이의 경계는 절대 허물어지지 않고, 누구나 어느 하나의 성별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본질주의적 관념과 결합해 젠더의 위계를 낳는다.
성별이분법이 차별로 작동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인터섹스에 대한 신체 정상화 수술이다. 인터섹스는 신체적인 몇몇 특징을 통해 여성 또는 남성을 나누는 성별이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분법에 맞지 않는 신체는 잘못된 것이고 교정을 해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이 수술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을 할 경우 남자 또는 여자 한쪽만 선택해야 한다.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 성별 정보를 선택할 수 없는, 이것도 성별이분법이 만든 문제다."
헤일러 "신체적 부분을 제외하고 이야기 해보면 성별이분법의 문제는 개인을 구분하는데 성별이라는 단일한 기준만 둔다는 것이다. 개인이 가진 다양한 특성, 수동성, 능동성, 자율성 등을 이분법적으로만 따져 '이 성별은 이런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정의를 내린다. 그것이 나중에는 개인의 해석까지 바꾸는 악영향을 준다."
도균 "화장실같이 성별로 공간이 나누어진 것도 문제가 있다. 트랜스젠더나 성별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성별로 구분된 공간 이용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경우에는 제지당하거나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겪지 않기 위해 물을 안 먹는식으로 해서 화장실을 안 가기도 한다."
- 당사자, 활동가로서 경험한 차별은 어떤 것이 있는가?
도균 "예전 어느 페미니즘 행사에 갔는데 지정 성별은 남성이지만, 치마를 입고 있던 저에게 사회자가 '거기 남자분'이라고 하더라. 그러자 제가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하려는데 사회자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질문하니까 영광이죠'라고 하더라. 그분은 제 신체를 남성의 신체로 해석했고, 남성이니 페미니스트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치마를 입고 다니면 손가락질하거나 차도나 계단 아래로 밀려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누가 갑자기 확 민 적도 있었다."
쁨 "성 소수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것이 화장실 문제다.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에서 어느 한쪽으로 들어갈 때 제지를 당한 경험들이 무수히 많다. 그러다 보니 들어갈 때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오늘은 어느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헤일러 "머리가 짧을 때 겪은 일이다. 어른들이 6살 정도의 사촌 동생한테 저를 가리키면서 '누나한테 가봐'라고 했다. 그런데 안 오더라. 나를 싫어하나 생각했다. 함께 놀고 있는데 사촌 동생이 갑자기 '형아'라고 했다. '누나'라는 말에 반응을 안 한 이유가 제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은 누나가 아닌데 왜 계속 누나 이야기를 하지'라고 생각한 거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성별을 나누다 보니 눈앞에 존재가 있어도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더라."
▲전주 퀴어문화축제 당시의 여행자 부스
여행자
성별이 무엇인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이렇게 공고한 성별이분법을 깨뜨리거나 완화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도균 "주민등록법이 바뀌어야 한다 생각한다. 사람들은 겉모습에 성별을 헷갈리다가도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서 주민등록법 개정이 많이 필요하다. 성별 정정 과정이 좀 더 수월해져야 한다. 현재의 성별 정정은 생식능력 제거, 수술 등을 요구한다. 이는 결국 성별 정정을 허가하되 시스템을 흔드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쁨 "차별금지법을 시작으로 입법이 적극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성별이분법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 정정 개념을 넘어 성별을 온전히 개인의 권리로 가져오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개헌에서 변화를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힘들어졌다. 차별금지법 그리고 나아가서 성별에 대한 관점이나 생각에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헌법이 법률적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도균 "또한 성교육 관련해서 트랜스젠더의 관점이 포함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쁨 "교육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 성별 이분법을 체득한다. 저한테도 3~4살짜리 사촌이 있는데 벌써 성별이 가장 큰 관심사다. 저한테 '남자예요, 여자예요' 물어보는 것이 일과이다."
헤일러 "저는 성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이 모두에게 주어졌으면 한다. 성별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성별이 뭔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대학 교양과목으로 하거나 고등학교 수업으로 포함하면 좋을 듯하다. 그런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하는 것과 그냥 아는 것은 차이가 있다."
도균 "사실 그런 고민을 트랜스젠더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올해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 여행자가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를 묻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나가던 보호자가 아이한테 '너는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어보더라. '너는 어떤 성별이니 이걸 골라야 해'라고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최근 몇몇 여성집회에서 트랜스혐오가 표출되거나 또 보수개신교 등이 트랜스혐오를 이용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성중립화장실이 생겨 위험하다'는 등의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도균 "성차별은 그 자체로 복합차별이다. 성차별의 개념 안에는 시스젠더·트랜스젠더, 남성·여성의 맥락이 모두 있다. 성차별을 해결하는 것이 단순히 남녀만의 문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성차별에 맞서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헤일러 "사실 양쪽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겠다. 다만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트랜스젠더를 진짜로 존재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 생각하는 가이다. 생각, 이념, 주장, 노선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넘어선 혐오는 있어선 안 된다. 트랜스젠더를 인터넷에서 유희 문화로 갖고 노는 사람들이 문제라 생각한다."
쁨 "한편으로 저는 이런 현상이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보여준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정체성 정치의 이점도 있겠지만, 정체성과 아닌 것의 경계를 강화하다 보면 목적에 다가가지 못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 차별 운동이라는 것을 어떤 정체성으로 뭉친 이익집단 간의 갈등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데 지금은 그것이 잘 안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헤일러 "우리는 정체성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정체성에 달린 꼬리표가 본인의 꼬리표가 되는 현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체성으로 사람을 나누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도균 "정체성 정치의 한계가 있고 그것이 미치는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서 저는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풀네임을 항상 강조한다. 특정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 성별이분법의 문제라는 것을."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로고
여행자
차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차별금지법제정 운동
-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재출범한 이후 여행자가 함께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 운동에 함께 하는 것은 여행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도균 "트렌스젠더는 성 소수자다. 소수자들이 거대한 구조적 억압에 맞서는 방법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일러 "문제 목록에 올라갔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젠더퀴어, 논 바이너리 등 다양한 정체성이 그간 일종의 재밋거리나 한때 지나가는 정체성 등으로 읽혔다. 지금은 진지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것이 여행자가 함께하는 의미라 생각한다."
쁨 "운동도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인적, 물적 자원이 있고 생활할 수 있어야 운동도 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삶이 나아진다면 노동권, 가족 구성권 등의 생활 조건도 나아져 운동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그 자체가 갖는 의미도 물론 있지만, 개인의 삶이 나아지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달라.
도균 "여행자는 자신의 젠더를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가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지 묻는데 우리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여행자의 활동, 젠더 여행자, 소책자 등에 많은 관심을 두고 지지와 후원을 바란다."
용어 설명 |
트랜스젠더 :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맞지 않는 사람
시스젠더 :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과 지정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젠더퀴어 : 여남의 이분법적인 성별체계와는 다른 성별정체성, 또는 이를 가진 사람
트랜스젠더퀴어 : 자신의 지정성별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 보다 자세히는 runtoruin.com/314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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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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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스젠더, 화장실 안 가려고 물도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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