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비룡소
아버지는 왜 있어야 하지?
"나, 궁금한 게 있어요." "그래, 뭐니?" "아빠에 관한 건데……." "그래, 뭐냐니까?" "도대체 아빠들이 왜 필요한 거예요?"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빠도 웃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웃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그 질문이 전혀 우습지 않았으니까. (15쪽)
만약 아빠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집에 갔더니, 아내와 에베리네와 로메오가 아빠를 보고…… 아빠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67쪽)
"어머나 세상에, 이런 건 정말 처음 보는구나!" "누구나 빨래를 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아빠가 말했다. "내 말은, 너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뜻이야." 어머니가 말했다. (88쪽)
아버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오늘은 아버지란 몸으로 살면서 이 말을 묻지만, 어릴 적에 두 어버이를 바라보며 아버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기 퍽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는 새벽처럼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오면서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바쁜' 몸이었거든요. 아버지를 볼 일이 드물었고, 말을 섞을 일이 손에 꼽을 만했습니다.
오늘날 적잖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볼 겨를이 없이 집 바깥에서 바쁩니다. 이뿐 아니라 적잖은 어머니까지 아이들을 볼 틈이 없이 집 바깥에서 바빠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에 들 텐데, 이윽고 중·고등학교에 이르면 두 어버이를 볼 새가 없기 일쑤입니다. 학교와 학원을 맴돌며 배우는 아이들한테 두 어버이는 어떤 어른으로 보일까요? 돈을 벌어서 살림을 꾸리는 일 말고, 무엇을 가르치거나 알려주거나 나누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일까요?
<아빠가 길을 잃었어요>(랑힐 닐스툰·하타 고시로/김상호 옮김, 비룡소, 1998)는 두 가지 줄거리를 다룹니다. 첫째, 책이름 그대로 '길을 잃은' 아버지를 보여줍니다. 보금자리를 새 곳으로 옮기면서 저녁에 일터에서 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만 새 집이 어디에 있는가를 몰라요. 그래서 길을 잃지요.
둘째, '길을 잃은' 모습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뿐이 아니라, '집에서 아버지라는 삶길이 무엇인가를 잃은' 모습이 됩니다. 버스를 타고 일터로 가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이랑 아주머니가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나는 어떤 아버지이지?' 하고 마음으로 묻다가 그만 어디에서 버스를 내려야 할는지 놓쳐요. 마음이란 길을 잃지요.
길을 잃은 아버지(아저씨)는 이레 내내 헤맵니다. 온갖 사람을 만나면서 길을 묻지만, 어느 누구도 이 아버지한테 속시원히 알려주지 못합니다. 길 잃은 아저씨는 자꾸자꾸 헤매면서 더 어지럽습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깨달아요. 어디로 가는 어떤 사람(아버지)이어야 하는가는 모르겠지만 익숙한 길이 하나 떠올랐지요. 바로 이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오랜만에 어머니 품에 안겨서 울기도 하고 고픈 배를 채우기도 하고 씻기도 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안일을 거듭니다. 이러면서 새로 깨닫지요. 여태 두 아이랑 곁님하고 지내는 보금자리에서 '집안일을 같이 한 적에 없는' 줄을 말이지요. 이뿐 아니라 일터에서 돈을 버느라 바빠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 틈'을 안 낸 줄 깨닫고, 이 아버지가 어릴 적에 저희 아버지도 똑같이 너무 바쁘신 줄 깨닫습니다.
자, 이렇게 깨달은 '길 잃은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면 새롭게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