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보여줬더니, 아이가 한 번에 젖을 끊었다

[초보 엄마 육아일기] 그 어렵다는 단유, 21개월 만에 성공하다

등록 2018.12.23 14:06수정 2018.12.2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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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후 16개월일 때부터 수유를 계속할지 말지 갈등했다. 그 무렵에는 주변 엄마들도 하나둘 단유(斷乳)를 하고 있었기에, 내가 너무 늦게까지 젖을 먹이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아이가 이유식을 좀처럼 안 먹어 젖을 떼기로 강하게 결심하기도 했는데, 고맙게도 단유를 고민할 무렵에는 잘 먹어줬다. 아이가 영양을 섭취하는 데 방해되는 건 아니므로 모유를 좀 더 먹이게 됐다.

단유에 성공한 선배 엄마들은 신세계가 열린다면서 강력하게 추천했지만, 젖을 먹고 싶을 때마다 손을 벌리면서 '주세요!' 표정을 짓는 아이를 바라보노라면 아직 나에게는 단유가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많은 육아 프로그램에서 젖을 주는 것이 곧 아기에게 애정을 주는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마음이 약했다.

원래는 아이가 생후 24개월이 될 때까지 젖을 먹이려 했지만 엄마 가슴에 대한 아이의 애착이 점점 심해지는 걸 느꼈다. 아이는 울고 싶은 순간이면 내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쐐기를 박았다. 아이가 어려움을 느낄 때 그것을 해소하는 수단이 엄마 가슴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가슴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푸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하기에 단유가 시급했다.

또한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수유하다 보면 손목과 허리 통증은 기본이고 가슴이 늘어지는 정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아마도 유축을 해서 더 그런 듯했다. 아이의 마음과 내 몸을 위해 단유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러고 나서 처음에는 친척들이 케첩을 바르면 효과가 있다기에 한번 시도해봤으나 아이가 충격을 받는 것 같아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듯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애착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에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유에 효과 만점인 그림

대신 육아 프로그램에서 봤던 대로 젖 모양의 그림을 그려서 아이에게 설명해주었다. 스케치북에 살구색 색연필로 양쪽 가슴을 그린 후 각 가슴마다 동그라미 얼굴을 그려 넣었다. 빨간색으로 한쪽에는 눈을 찡그리고 입꼬리가 내려간 얼굴을 그렸고, 다른 한쪽 얼굴에는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두 방울씩 뚝뚝 떨어지고 우는 입 모양을 그렸다.
 
단유에 효과적인 그림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가슴을 그린 후 우는 얼굴을 그림
단유에 효과적인 그림스케치북에 색연필로 가슴을 그린 후 우는 얼굴을 그림우리
 
"이제 쭈쭈하고 안녕, 해야 한대. 네가 너무 오래 먹어서 쭈쭈가 힘든가 봐."


이 그림을 한 번 보여주고 아기를 이해시켰다. 워낙 고집이 센 아이라서 무슨 이런 거로 과연 단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정말 효과 만점이었다. 그림을 보여준 그 날 저녁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 아이가 젖을 찾긴 했지만 금세 포기했다.

"안 먹어. 아야, 호!"

아이는 내 가슴으로 다가오다가도 스스로 손을 내저었다. 단유 3일째. 유축기로 계속 젖을 빼내고 젖이 또 불까봐 집에 있는 항생제 한 알을 먹은 후 모유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들은 식혜와 홍삼을 먹었다.

아이는 젖을 찾다가도 "엄마 아야해" 하며 먹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꾸만 내 팔다리를 혀로 날름거렸다. 젖을 못 먹는 허전함을 스킨십으로 풀었다. 단유 6일째, 아이는 젖을 보고도 만지기만 했다.

생후 21개월 만에 원피스를 입고 아기와 외출하는 데 성공했다. 단유를 해도 너무 매몰차게 젖을 끊지는 말고 아이가 원할 때 간식처럼 주라는 말도 있어서 천천히 하자고 마음먹은 걸 이제야 이뤄낸 셈이다.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젖을 먹여야 하니 풍덩한 티셔츠에 바지만 입고 다녔다. 예쁜 원피스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루었다.

단유를 하고 나서는 아이의 낮잠을 재우기가 힘들었다. 항상 그러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2시간 반 동안 졸려 하는데도 계속 칭얼대며 엄청나게 울었다가 놀았다가를 반복했다.

아이가 하도 칭얼거리는 통에 젖을 보여주기만 하려고 수유복을 입었더니 아이는 무지 반가워하면서 내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입부터 내밀어 빨려고 달려들지는 않고 살짝 뽀뽀만 하고는 "아파" 하면서 제 입을 뗐다. 내 가슴을 톡톡 치면서 입을 하마처럼 '아' 벌려서 물려는 시늉을 하면서도 진짜 빨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는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그동안 아이가 놀라거나 화날 때면 내 가슴을 찾고 의지해서 제 감정을 좀처럼 조절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고마운 우리 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는 엄마의 모유, 아이에게는 첫 식사이자 첫사랑이다. 엄마의 가슴과 이별하는 것은 아이에게 어려운 일이므로 더 뜨거운 가슴으로 아이를 안아 달래야 한다.

모든 이별에 후유증이 따르듯이 아이도 단유를 하며 후유증을 앓았다. 단유 이후 아이에게는 내 팔꿈치를 만지는 버릇이 생겼다. 팔꿈치의 말랑말랑한 촉감이 가슴과 비슷해서 안도감을 주는 것 같았다. 아이는 불안해도, 기분이 좋아도 툭하면 내 팔꿈치를 만진다. 자기 식으로 '팔꿈치' 노래까지 부른다.

"엄마 팔꿈치! 치! 치! 엄마 팔꿈치 좋아."

지금도 아이는 잠자리에서 꼭 엄마 팔꿈치를 만져야만 잠들고, 잠결에 아빠 팔꿈치라도 대주면 단박에 알아채고는 신경질을 부린다. 생후 21개월부터 생후 62개월이 넘도록 아이의 팔꿈치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단유 #모유 #수유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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