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벅시 대표. '벅시(buxi)'는 버스와 택시의 합성어로, 11~15인승 렌터카로 승객들을 주요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공항 픽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김시연
한 택시 기사의 죽음이 카카오 카풀 서비스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10일 택시기사 최우기(57)씨가 국회 인근에서 분신해 숨진 뒤 카카오모빌리티도 오는 17일 시작할 예정이던 정식 서비스를 내년으로 미뤘다.
그럼에도 IT(정보기술) 업계에선 카카오 카풀 서비스를 비롯한 스마트폰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를 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보고 있다. 중대형 렌터카를 이용해 공항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벅시(BUXI)' 이태희(48) 공동대표가 대표적이다.
13일 낮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난 이 대표는 "카카오 같은 플랫폼 업체와 택시기사는 서로 적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라면서 카카오와 택시 노동자의 갈등으로 비치는 걸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0일 정주환 카카오모빌리티 대표 등과 함께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만났고, 택시업계 관계자와도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풀 사태 본질은 택시요금 인상과 노동자 생존권 요구"
"지금 사태의 본질은 카풀 문제가 아니다. 외형적으로는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차를 부를 수 있는 서비스(카카오택시)로 택시 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것처럼 보였던 플랫폼(카카오)에서 카풀 서비스를 내놓자, 이제는 택시업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다며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카풀'이란 혁신에 따른 이익과 손실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나누느냐, 여기서 정치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다."
이 대표는 산업혁명기 러다이트 운동을 예로 들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공장에 기계를 들여와 일자리를 줄이려 한다면서 기계파괴운동을 벌였다.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비슷한 시기 공장에 기계를 도입한 프랑스나 스웨덴에선 노동자들에게 굴복해 산업혁명이 늦어진 사례가 있다. 생존권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혁신을 가로막을 순 없지만 늦출 순 있다. 전체 국가 경제 차원에서 보면 혁신으로 앞서나간 나라와 뒤쳐진 나라로 구분된다.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에 사회보험이 많이 도입된 것처럼 혁신으로 이익을 거두는 쪽과 피해를 보는 쪽의 이해를 잘 조정해 혁신이 효과적으로 일어나면 그 나라는 흥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는 결국 정부와 정치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 대표는 최근 카풀 사태의 본질을 택시업계와 정부·정치권 사이의 줄다리기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카풀 서비스를 막는다고 택시업계가 더 좋아지거나 택시노동자 임금이 올라가는 건 아니다"라면서 "결국 카풀은 핑계일 뿐이고 택시법인은 정부에 택시요금 자율화를, 택시 노동자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택시 부족한 출퇴근 시간대 카풀 반대는 소비자 이익 침해"
이 대표는 "(카풀 서비스에)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택시노조도 카카오에 직접 책임지라는 요구는 아닌 걸로 안다"라면서 "택시노조는 정부에 혁신에 따른 사회 변화로 피해를 입는 계층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택시업계에선 카카오가 택시산업 발전을 함께 하겠다고 시작했다가 카풀 업체인 '럭시'를 인수해서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논리인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카카오 카풀은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으로 제한해 전업화를 금지하고 있다. 택시가 잘 안 잡히는 출퇴근 시간대에 카풀이나 자가용 렌터카로 해결하려는 건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카카오란 플랫폼은 택시든 자가용이든 렌터카든 법적으로 허용하는 교통수단을 통해 플랫폼에 들어오는 수요를 대응해줄 의무가 있다. 소비자 측면에서 지금 택시업계의 주장은 빠르고 편한 이동을 원하는 소비자의 이익(이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쏘카에서 인수한 '타다'(승합차 렌터카 서비스)는 강제배차 시스템이어서 호출하는 승객에게 100% 배차하는 반면, 카카오택시는 100% 배차가 되지 않는 불완전한 상품"이라면서 "카카오 카풀은 상품의 불완전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택시가 만약 카풀 도입을 막으려면 배차에 더 적극적으로 응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택시노동자들 요구도 카풀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생계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루 11시간씩 일해도 한 달 200만 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상황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그 울분이 카풀로 쏟아져 나왔을 뿐이다. 앞으로 자율주행 단계가 되면 택시기사란 직업 자체가 없어지는데 그때도 택시기사들이 반대한다고 사회적 호응을 받을 수 있을까? 받지 못한다. 자율주행 등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택시기사의 생존권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에서 13일 택시 사납금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는 이를 환영하면서 택시완전월급제 시행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