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대회에 앞서 최경남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장이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경주포커스
천도교 2세 교조이자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가터를 동학공원화 하려는 움직임이 경북 경주시민들을 중심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22일 해월 최시형 선생 생가주변 동학공원화 추진사업회가 발족했다. 경주문화원에서 열린 창립대회에서는 해월 선생 생가터 주변을 공원화하자는 취지와 목적을 담은 정관을 확정하고, 회장 김윤근 경주문화원장, 부회장 임우남 방정환한울어린이집원장, 최영기 전신라문화유산조사단장 등 임원을 선출했다. 천도교계와 향토사학자 등 그동안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던 20여 명은 사업회 이사로 선출됐다.
사업회는 경북 경주시 황오동 227번지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가터 주변을 인본주의와 만민평등을 주창한 해월 선생의 3경 사상(경천, 경인, 경물)을 기리는 다양한 공간으로 조성, 생명과 평화를 체험하는 동학공원으로 만들어 간다는 계획이다. 해월 선생의 정신, 행적과 업적 발굴, 유허비 및 기념조형물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선생의 생가터는 경북 경주시 황오동 227번지, 현재 천도교 경주교당 뒤편에 위치해 있다. 중앙교회가 이전한 뒤 경주시에서 공영주차장으로 조성한 곳이다.
천도교 경주군 교구연혁에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가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포덕 51년 1월 (1910.1)
경주군 황오리 손승조 씨는 천도교중앙총부 정광조 씨로부터 전교를 수(受)한 후 동 리 229번지의 대지와 동 지상의 건물 미가(尾家) (正寢)정침 1동 5간 행랑 2동 4칸과, 동 228번지의 대지와 지상 건물 미가 정침 1동 6칸과, 동227번지 전(田)252 평(제2세교조 최해월신사 유허지)과를 천도교중앙총부로부터 매수(買受)케 하고 전기(前記)건물 229번지 상(上) 정침1동 5칸에는 남(男)전교실로 , 228번지 상(上) 정침 1동 6칸에는 여(女)전교실로 설립하다.
경구군 교구연혁에는 227번지의 전(田)252 평을 '제2대 교조 최해월신사 유허지'라고 특별히 표시했다. 1910년 황오리의 손승조씨가 최시형 선생의 생가를 포함해 현재의 경주교당 등을 매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의 생가터는 1935년 경주교당 신축을 위해 일반에 매각된다.
포덕 76년 3월(1935.3)
본 교당은 원래 고가(古家)로써 전도될 염려가 유하여 위험한 상태에 지함으로써 부득이 개축하기로 결의하고, 본원 소유 전15두락과 부인전교실과의 매각 대금 4백여 원과 일반 동덕의 희사금 백여 원 합계 5백여 원으로 본 교당을 신축하다.
- 경주군 교구연혁의 기록
경주교구의 땅과 가옥을 매입한지 25년 되는 해였던, 1935년에 228번지 부인전교실과 227번지 해월신사 생가터(전 15두락)를 팔았다는 것이 경주군 교구연혁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다른 주장도 있다. 경주교당에 살고 있는 신도에 따르면 선생의 생가터에는 1956년경 집이 있었고 경주교구에서 세를 받고 있었지만, 후에 어떤 교인이 팔아서 이자를 불리는 게 더 좋다하여 팔았고 다른 교인이 이자를 준다며 돈을 가져가 떼먹고 교회도 안 나왔다고도 전한다. 그때 227번지가 기독교교회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1950년대 말 내지는 1960대 초반까지 해월신사 생가터(227번지)를 경주교구에서 관리했다는 것으로, 경주군 교구연혁과는 다른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