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하필 ‘청년 보장’이었을까? 우리는 ‘보장’이라는 표현에 어떤 요구를 담고자 했을까?
정준영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다양한 요소들은 일관된 원리로 통합되어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정책 패러다임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다. 다만 기존의 패러다임에 너무 치우치거나 그러한 관성에 갇혔을 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반성에 의해 '청년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청년에게 무엇을 보장할 것인가
프랑스와 서울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지원한다는 개념이 공통되게 사용된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는 '사회 진입'을 분명하게 '노동시장으로의 이행'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서울의 경우는 "당장 구직에만 제한되지 않고, 진로 탐색, 창업, 창작, 사회활동 등 다양한 경로와 과정"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 현실에서 양극화되어 있는 노동시장에 미취업 청년을 빠르게 진입시키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없고,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서울 사례 또한 최종적인(혹은 궁극적인) 목적지는 결국
'청년이 스스로 자기 일을 찾아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구직 지원이 아니라 사회진입 지원'이라는 논점을 형성하기보다는, '구직'의 개념이 종전의 전형적인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노동시장의 변화와 청년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폭넓게 확장되도록 하는 작업이 더 유효하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청년보장은 노동과 고용의 문제와 분리되어선 안 된다.
청년기 사회구성원(한 사람의 '시민')은 학교를 떠나 직업을 가지는 첫 번째 이행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제약·위험과 마주하고 문제를 겪게 된다. 이때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 필요'의 영역에 대해서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결국 그러한 권리는 시민의 '연령'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상응하는 국가의 의무로서 사회적 재화의
'정의로운 불균등 분배'의 필요성이 도출된다. 여기서 재화의 형태는 '청년에게 무엇이 꼭 필요한가'의 유형에 따라 소득을 보전하는 현금 수당부터 공공고용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지게 된다. 청년 보장의 핵심은 이 스펙트럼을 얼마나 촘촘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구성하느냐에 있다. 그 구성물이 곧 청년 보장 제도의 세부 사업이 된다. 이렇게 청년의 필요에서 청년 보장의 내용을 도출하는 것은 '권리'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청년 보장은 '권리의 보장'인 것이다.
한국의 청년 보장 도입 과정에서는 현금 수당만이 주목받으면서 포퓰리즘 논란이 있었지만, '청년에게 직접 돈을 준다.'는 파격성을 떠나 재정적 지원 또한 청년 보장의 한 가지 수단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는 프랑스와 서울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포퓰리즘 :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본래의 목적보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행태.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프랑스 청년 보장' 6년과 '서울 청년 보장' 3년
2018년 현재, 프랑스 청년 보장과 서울 청년 보장은 나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참여자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서울 청년 보장은 이미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매체가 그것을 다루고 있고, 참여자들 스스로 말하고 있다. 이는 취업률이라는 양적인 수치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 청년 활동 지원사업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당장 취·창업이라는 성과 달성을 압박하지 않고, 지원 기간 참여자가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보장받으면서 자율성을 가지고 '자기 일을 찾아가는 경험과 활동'을 모색하도록 했을 때, 참여자 청년들이 진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자신감과 의지를 얻는 등 정책효과가 나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현우 외, 2018) 그리고 "금전 지원을 매개로 정책에 유입된 청년이 심리상담·자기 탐색·관계 형성 사업에 참여하고, 권역별 매니저와 소통하며 정보를 받는 등, 비금전적 지원 프로그램이 패키지형으로 제공되었을 때, 그런 효과가 더 커졌음"이 나타났다. (정준영, 2018)
특히 서울시 청년 활동 지원센터가 사업을 맡아 집행하는 동안, 참여자의 필요와 욕구를 중심으로 새롭게 시도하고 발전시켜온 비금전적 지원 프로그램은 청년 정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것을 '서울형 동반[동행] 프로그램'의 모색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당시 서울시 사업을 설계하던 초기에는 프랑스 청년 보장 제도의 구성요소 중에서도 주로 재정적 지원 수단에 관심을 두었지만, 서울에서 사업이 실제로 추진된 이후에는 '미씨옹 로칼'이라는 지역 단위 실행기관과 '동반 프로그램' 쪽으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하게 된다.
한편으론 청년의 '진입' 과정을 잘 지원하더라도, 이행의 출구이자 종착지인 '사회'(좁은 의미로는, 분명하게도 '노동시장')의 현실이 함께 개선되지 않으면 청년의 삶이 나아지기 어렵다. 청년 보장은 전체 사회를 바꾸는 프로그램의 작은 부분이다. 정책에 요구되는 구체적인 역할을 두고 평가와 개선이 계속되어야 한다. 큰 그림 속에서 개선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이제 막 시작한 '청년 보장'이 내디딜 다음 한 걸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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