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명하실 때마다 한자가 나오면 직접 써주시며 뜻을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경실련
-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도 하셨는데, 우리나라의 친일청산은 얼마나 이뤄졌다고 보시는지요?
"우리가 일제 하에 35년, 36년 식민지배를 받다보니까 대부분은 현실에 적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1~2년도 아니고 한 세대가 넘도록 지배를 받다보니까 자연히 거기에 순응하는 거죠.
3.1운동 당시에도 민족대표 33인을 뽑을 때 지명도가 높은 분들을 민족대표로 모시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다 거부했어요. 바위에 계란 던지기지 만세 몇 번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식민지를 내놓을 사람들이 아니라고 본거죠. 괜히 피해만 온다고 거절했지요. 그래도 종교인들은 양심적인 세력 아니에요? 지금은 많이 세속화 됐지만. 그렇게 그분들이 나서게 된 거지요.
일제 30년, 오래 지배를 받다보니까 자연히 친일부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45년 해방 되고 새 나라를 건설했으니, 과거 잘못됐던 것을 한번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반민특위를 만들어서 친일한 사람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이승만 정권 자체가 국내에서 친일했던 세력들과 가깝다 보니 반민특위가 1년도 못 하고 강제해산 당했지요. 그 뒤로 60년~70년이 흐른 거죠.
역사학자로 '역사는 무엇이냐?'고 했을 때, 역사는 '고백하는 것'이라고 봐요. 말하자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것도 역사화해야 되지만 우리가 부끄러웠던 과거의 역사도 한번쯤은 고백해야 한다, 정리하고 역사화 시켜야 된다, 한번쯤 털어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친일 명단을) 2005년 1차 발표하고, 2009년 11월 효창공원 백범 김구묘소 앞에서 최종 발표했어요. 그것이 준 사회적 파장은 상당히 컸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옛날에 일제 때 내가 뭐하고 뭐했다 자랑스러워 했어요. 집안의 가문의 영광으로 말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친일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진 않잖아요."
- 논란도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박정희를 넣느냐 마느냐가 제일 논란이었죠. 그런데 우리가 그 근거를 찾았어요. 1931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 박스기사로 22살의 조선의 젊은이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는 혈서를 썼다고 실린 거예요. 일본에서 볼 때는 장한 조선 청년이었던 거죠. 처음에 집안에서 명예훼손 걸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대로 아들(박지만) 이름으로 발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이겼죠.
또 여러분도 다 알만한 인물로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이 있어요. 그 양반이 민족의 애국자로 여겨지는데, 1905년 외교권 박탈당하고 합방된 이후 친일적인 글을 많이 썼어요. (이 글들이) 다 높게 평가받았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친일 인사였느냐며 충격을 많이 받았지요.
친일인명사전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욕도 많이 먹고 빨갱이 소리도 듣고 그랬지만 역사학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했다는 자긍심이 있어요.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닙니다. 저는 아직 위원장직을 맡고 있고, 이제 10년 돼서 보완을 좀 하려고 해요. 들어간 사람들 중에 잘못된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때 빠진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해외에서 밀정 노릇을 한 사람 등이 있는데 당시로서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다 못 넣었거든요. 추가 보완할 계획이에요."
- 통일이 되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끝난 게 아니라고 하는데, 현재 남북관계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만절필동(萬折必東) 이란 말이 있어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현재, 우리가 100년 전의 사건을 다시 체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주평화'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는 잃었던 국권과 주권을 되찾는 '자주독립'을 구호로 내걸었다면, 오늘날은 '자주평화'가 중요합니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중국의 고사입니다. '중국의 황하에서부터 시작해 수업이 여러 번 꺾이며 굽이쳐 흐르고 수만 리를 내려와 만 번 굴절하지만, 반드시 동쪽 황해바다로 물이 흘러내려간다' 이런 뜻이에요. 이게 맞다고 봐요.
지난 70년 동안 남북 간에 별 일이 다 있었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있겠지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순 없어요. 독재자든 어느 누구든, 어느 인물, 한 시대에 그 흐름이 막히진 않아요.
남북문제가 70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반드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하는 그 날이 올 거예요. 그런 조짐이 보여요. 우리가 똑똑해야 돼요. 국민들이 지도자를 잘 뽑고, 잘못 할 때 감시하면 남북문제도 서서히 풀릴 것이라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