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군 조성면 용전리 대흥 마을(최근 모습)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이정국
집에 들어서니 마침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축을 받고 부엌을 나서고 계셨다. 인사를 했지만, 어머니는 거의 반응이 없이 단지 흐느끼기만 하셨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전번에 뵈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심하시진 않으셨는데...
방 안으로 부축해 들어가서 아랫목에 눕혀 드렸지만, 자꾸 일어나서 나가려고만 하셨다.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어른거렸다. 어머닌 날 알아보긴 하셨지만, 반가워하시는 표정을 짓지는 못하셨다. 단지 초점이 흐린 눈으로 멀뚱멀뚱 보기만 하셨고, 남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따라할 뿐이었다. 57세가 되신 어머니는 올해 2월 남동생의 대학 졸업식에서 뵐 때만 해도 멀쩡하셨다. 그런데 별다른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되시다니... 건강하시던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수 화장실을 가시긴 하셨지만, 지극히 불안한 걸음걸이로 왔다 갔다 하셨고, 과거 건강하셨을 때 했던 행동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시곤 하셨다. 막내 준이가 차려 준 식사를 하시다, 갑자기 일어나 밥공기를 들고 나가더니, 뜰에 있는 개에게 남은 밥을 갖다 주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부축하고 따라다녔다. 그리고 부엌에서 구정물을 버리더니, 그 찌꺼기를 닭장 쪽으로 가서 기르던 닭들에게 모이로 주기도 하셨다. 그러다가 틈 만 나면 마루를 걸레로 닦곤 하셨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은 마루가 '더러워서' 라기보다는 건강할 때의 습관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어머니를 자꾸 방에 편히 누워계시게 하려는 나의 행동은 헛수고였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셨을까? 울산으로 시집간 여동생(29세)을 들먹이더니, 마중 가야겠다며 자꾸만 밖으로 나가시려고 하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동네 어귀로 향해 갔다. 마을 골목을 지나는데, 평소에 친하게 지내시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안됐다는 듯 혀를 찬다.
"어디를 간다 그러까?"
"여동생이 온다고 나가 보신다 그래서요..."
"오메, 그래 잉... 쯧쯧"
어머니를 마을 어귀까지 모시고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방 안에 누워 계시다가도 자꾸 여동생 이름을 부르며 나가시려고 하셨다. 그때 친척인 당숙모께서 잠깐 들르시더니 안타까워 하셨다.
아버지는 답답하신 듯 자꾸 술만 드시다가 화가 난 듯, "왜 차라리 죽지, 살아서 나까지 귀찮게 하냐?"며 소리치곤 하셨다. 아버지의 그 말이 서운했다. 하지만, 정말 어머니의 행동을 보니, 그동안 옆에서 계속 돌보신 아버지 역시 안타깝긴 했다. 아버지는 병문안 오신 당숙모에게 다른 사람들은 자주 들여다보는데, 동네 친척들은 얼굴도 안 비친다며 불평하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옆에서 누가 하는 말을 반복하셨고, 마치 한두 살 어린애처럼 행동하셨다. 시골에 계속 살면서 부모님과 같이 지낸 막내 준이는 정말 참을성 있게 행동하면서 능숙하게 어머니를 대했다. 우린 마치 고집 부리는 아이를 재우려는 듯 어머니를 눕히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나는 동생이 TV 코미디 프로를 보고 있는 것에 화가나 티브이 끄라고 소리치니 껐다. 그러자 옆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는 "티브이 켜라!"고 웅얼거리듯 반복하셨다. 그때서야 나는 티브이를 보는 동생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정말 어머니에게만 신경 쓰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밤중까지 계속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