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꼬마의사 맥스터핀스>에 푹 빠져서 한동안 역할놀이에 심취했다.
디즈니
최근 아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꼬마의사 맥스터핀스>에 푹 빠져서 한동안 역할놀이에 심취했다. 멀쩡한 장난감을 가지고 오더니 "얘가 다쳤어, 승현이가 할게"라고 크게 외치며 조막만한 손으로 장난감을 퉁탕거렸다. 남편은 그 모습이 또 좋아서 스마트폰으로 '의사 역할놀이'를 열심히 검색했다.
아이에게 병원놀이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다. 남아용은 파란색, 여아용은 분홍색으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었다. 심지어 여아용 중에는 분홍색으로 된 간호사 세트가 따로 있다. 나는 아이에게 간호사 세트를 사주자고 했다. 남편은 내가 하는 행동에 불만이 있는 눈치였다.
"여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건 좋은데... 아이한테 간호사 역할놀이를 주고 간호사가 되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잠시 여러 생각이 오갔다.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원한다면 간호사가 되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는 뭐야?"
"간호사를 남자가 하면 어떤지 알잖아. 애가 좋은 쪽으로 되길 바라야지."
사실 남편이 이런 불만을 드러냈을 때, 나 또한 아이가 간호사가 돼도 좋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진 못했다. 남편이 아들에게 간호사 놀이를 선물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직업군의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소방관, 과학자, 의사는 남성으로, 간호사, 유치원 교사는 여성으로 분류하는 직업 교육 콘텐츠에 분개하면서도, 정작 아들이 간호사나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것은 두려워한다.
여자아이들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남자아이들에게도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의미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
엄마도 나한테 뽀뽀하잖아!
어느 날은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아기가 너무 예쁘다 하시며 무작정 안고 뽀뽀를 하셨다. 아이와 부모인 나에게 묻지 않고 스킨십을 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어르신에게 그런 기색을 내비치긴 싫었다. '남자아이인데 뭐 어때'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들보다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러 나왔다. 아들은 그 아이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달려가서 껴안고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쳤다.
"안 돼! 여자아이한테 함부로 그러는 거 아니야. 동생에게 안아도 되냐고 물어봐야지!"
"엄마도 나한테 뽀뽀하잖아! 안 물어봤잖아!"
화가 난 아들은 짧고 어눌한 발음으로 반박했다. 할 말이 없었다.
여자에게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남자아이에게만 상대방의 의사를 반드시 확인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면 충분할까? 남자아이도 자신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자기를 만지려고 할 때 원하지 않는 스킨십은 거부할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 젠더 감수성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한바탕 싸우고 난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아들에게 달려가서 "아들 뽀뽀!"를 외친다. 정말 난감하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싫다고 난리를 쳤고, 남편은 이제 세 살인 아들에게 자신의 서운한 감정을 여과 없이 보이며 죄책감을 심어준다.
아이가 잠들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에게 강제로 혹은 조건 없는 스킨십을 요구하지 말자고 했다. 남편은 부모가 되어서 그 정도 스킨십도 요구하지 못하냐며 불평을 했다. 그날 우리는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이 훗날 아이의 젠더 감수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여야 했다.
엄마 페미니스트, 젠더를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