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과 세상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라는 철학적 물음이 떠오른다.
구창웅 제공
짙푸른 물빛과 투명하게 빛나는 햇살. 타일랜드의 바다는 "문학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청년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 사이에서 '전설'로 떠도는 19세기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만약 랭보가 200살쯤까지 살아 태국 푸켓과 파타야의 파도를 보았다면 어떤 노래를 만들어냈을까 궁금하다.
사철 내내 더위만 지속되는 남국. 태국에선 가만히 있어도 줄줄 흐르는 땀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거기에다 폭염과 잠복한 게릴라처럼 일상을 습격하는 스콜. 사람을 축축 늘어지게 만드는 눅눅한 습기에 두 손 들고 항복해야 하는 나라.
내가 거길 찾았던 우기(雨期). 여행 기간 내내 하늘은 물에 젖은 담요처럼 내려앉고 바다는 길 잃은 아이처럼 울어댔다. 흩뿌리는 소나기를 보며 방파제에 서서 듣는 파도소리는 흡사 천둥소리인양 두렵고도 장엄했다.
낯선 나라의 익숙지 않은 날씨처럼 심란해진 마음은 쓸쓸함을 부르고, 그 쓸쓸함은 아주 먼 기억을 느리게 소환했다. 빛나는 태양 아래서의 우울증이라니… 어울리지 않았지만 닥쳐온 진솔한 감정을 떨쳐낼 이유 또한 없었다.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의 문장을 빌리자면 시인이란 "누런 해가 뜨는 곳에서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슬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니까. 유럽과 중국 관광객이 하나 둘 빠져나간 황량한 해변, 서늘하고 푸른 바다의 적막감이 마구잡이로 밀려왔다.
그것들과 만났으니 독한 술이 간절해질 수밖에. 나무로 만든 계단이 삐걱거리는 항구의 조그만 카페에 홀로 들어섰다. 오징어회나 우럭매운탕처럼 눈에 익은 안주는 없지만, 게와 새우를 튀겨 독한 태국산 버번(Bourbon) '리젠시'를 몇 잔이고 거푸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