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1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제임스 로퍼의 기사.
동아일보
한편, 제임스 로퍼의 또 다른 기사에서는 제주 4.3과 그리스 내전까지도 같은 선상에 놓고 파악하는 미국인들의 인식이 드러난다. 역사학자 허호준의 논문 '냉전체제 형성기 미국의 제3세계 개입과 역할- 그리스 내전과 제주 4.3의 비교를 중심으로'에 로퍼의 또 다른 기사가 인용돼 있다. 이 논문은 당시 한국 언론에 번역된 로퍼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 실었다.
"미국 당국은 경찰이 특히 소란한 제주도에서 수인(囚人, 죄수)을 구타함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경찰은 관인(寬仁, 관용)을 약속하고 있으나, 그들이 복종함은 곤란시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은 경찰에 대한 증오감을 선동시키기가 용이하다. 이는 희랍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희랍에서는 거야(拒野, 다루기 힘든)하고 난폭한 경찰 부대가 있었다. 아테네에서는 1944년 12월 3일에 경찰이 좌익 시위 군중에 발포했다." - 제주4.3연구소가 2015년 발행한 <4·3과 역사> 제14호에서 재인용
미국과 한국 경찰이 폭력을 자제하고 있지만 제주도민들이 복종하지 않아서 사태가 커지고 있다는 미군정의 왜곡된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기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주 4.3과 그리스 내전이 동일한 양상을 띠는 사건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점이다.
로퍼 특파원의 두 기사는 한국과 그리스, 제주와 그리스 사이의 공통점에 주목하는 미국인들의 시각을 반영한다. 공산주의를 견제하고 '민주주의 거점'을 구축할 필요성에서 한국 제주와 그리스를 바라보는 그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두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이 동일하기 때문에, 두 지역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한 그들의 대처법 역시 동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내전을 계기로 탄생한 '트루먼 독트린'
제주 4.3보다 약간 먼저 개시된 그리스 내전을 계기로, 미국은 전후 외교정책의 기조가 될 트루먼 독트린을 확립했다. 그리스 내전을 명분으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자유와 독립의 유지에 노력하겠다'는 선언을 1947년 3월 12일 내놓게 됐던 것이다.
그리스에서 거세지는 반미 투쟁의 열기 앞에서 미국은 움츠려들지 않았다. 지금의 미국 같으면 움츠려들 수도 있었지만, 당시의 미국은 아직 '싱싱한' 세계 최강이었다. 그래서 그리스 상황을 보면서 적극적인 대결정책, 공세적인 냉전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미국이 이처럼 그리스에 집착하게 된 배경을 위의 허호준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은 1940년대 후반 동·서를 연결하는 육·해·공로의 고속도로로서 중동의 거대한 자원 가치를 인식했다. 그리스는 이곳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미국은 중동에서 소련의 야욕이 채워진다면, 미국의 이익은 물론 소련과의 일반적인 입장에서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 이 지역에서 소련의 팽창을 봉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는 1453년 동로마제국 멸망 이후로 오스만투르크(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이 나라는 투르크가 약해지는 틈을 타 1821년부터 독립전쟁을 벌이다가 1822년 독립을 선언했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투르크와 싸웠다.
이런 역사를 지켜본 미국인들의 눈에는, 그리스가 터키와 중동을 견제하는 데 유용한 지역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또 미국은 그리스 위쪽의 동유럽 공산 진영을 견제하는 데도 그리스가 유용한 땅이 되리라고 인식했다.
이 같은 인식에서 그리스를 거점으로 냉전질서를 전개하는 트루먼 독트린이 형성됐고, 이에 따라 미국은 반미세력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대결 국면을 펼치겠다는 태도를 굳히게 됐다. 이런 트루먼 독트린이 확립되던 초기에,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게 제주 4.3 사건이었다.
그리스가 중동에 대한 소련의 진출을 견제하는 데 유용했다면, 한국과 제주는 소련의 동아시아 진출을 견제하는 데 유용했다. 동시에 한국과 제주는, 미국의 적에서 우방으로 변하고 있던 일본을 지켜주는 울타리로도 유용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과 제주를 그리스와 똑같이 취급하게 됐다.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폭력적 방법으로라도 사수해야 할 지역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런 미국의 입장이 그리스 내전 개입과 제주 4.3 진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제주 4.3과 그리스 내전은, 신생 세계최강인 미국 편에 서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본보기였다. 이를 통해 미국은 동아시아와 중동의 동맹국들을 친미 진영에 붙들어두고자 했다. 제주 4.3과 그리스 내전이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반미운동의 후과(後果)를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군·경의 사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