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 5반 성호 누나 박보나씨
이희훈
"참사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도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문득 앞으로 제게 남은 모든 순간이 이러진 않을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이 죄책감과 슬픔이 무뎌질 때가 올까 싶고.
이런 생각에 여행을 떠났어요. 참사 이후,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서.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조차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그냥 울고 싶어서 떠난 것도 있어요. 여기서는 어떻게든 눈물 꾹 참고 버티려고 하거든요."
이런 생각 외에도 한국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면 매번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이 들었단다. 이번 여행은 현실에서 벗어나 본인을 찾기 위해 떠난, 모종의 도피 여행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도 결국은 세월호에 대한 기억과, 동생을 향한 추억으로 수렴됐다.
"예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진 찍은 걸 모아놓고 보면 동생과 관련된 것들이 많아요. 이번에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세월호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여행 사진 중 헝가리를 여행했을 때 찍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헝가리 도나우 강 주변으로 금속 주물로 만든 유태인들의 신발이 일제히 벗어져있는 설치 예술품이 있었어요. 유태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거였는데, 이게 세월호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놨어요. 이렇게 사진들을 찍으면서 느낀 건, 모든 사진이 결국 제 목소리라는 거예요. 말하지 못하고 담아 두었던 얘기든, 혹은 제가 외면하고 있던 것이든."
이어 박보나씨는 전시된 사진 중,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이 뭐냐는 물음에 본인의 사진이 아닌, 최윤아씨의 사진을 골랐다.
"이전에 윤아 언니랑 같이 '드래곤 길들이기'라는 만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갑자기 언니가 주머니에서 윤민이 학생증을 꺼내는 거예요. 그러더니 카메라 앞으로 윤민이 학생증을 들어 올리고선 영화 엔딩 크레디트와 같이 찍더라고요. 너무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보는데 언니는 무슨 느낌으로 이 영화를 봤을까 싶었어요."
박보나씨의 말을 따라 최윤아씨의 사진 앞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먼저 보이는 사진은 동생의 학생증을 들고 찍은 12장의 사진이다. 사진의 배경은 대부분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다. 그는 왜 이렇게 찍은 걸까?
[윤아의 사진전] 12장의 동생 학생증 사진과 20장의 봉안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