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발 이야기책갈피가 없으니 숙소에 있던 화장지를 잘게 잘라 그걸로 책갈피를 대신했다.
정덕수
새벽녘 일시적으로 현장을 떠나 전기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산불 때문에 언제 전기를 차단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이 지나는 길목에서 최대한 벗어난 지역) 장소로 이동해 숙소를 잡고 현장 상황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송고하며 틈틈이 다시 책을 펼쳐 놓고 읽었다.
때때로 "아, 이 대목은 버선발 이야기를 읽은 감상문을 쓰게 되면 꼭 인용해야겠다" 싶은 구절엔 숙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장지를 잘게 찢어 표시를 해가며 노트북과 책 사이로 시선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요 땅덩이 놈 요놈, 우리 엄마 괴롭히는 놈 요놈, 네 놈을 알알이 앙짱(박살) 낼 때까지 내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어림없는 소리. 내 끝까지 네놈을 콩가루로 알랑알랑 바술 때까지 짓이기고 말 거다. 우리 엄마 울리는 요 우라질 땅덩이 놈 요놈….' 「버선발 이야기 90쪽, '나 아직은 살아있어 엄마' 중에서」
여섯 살이 되자 눈 내리는 밤 머슴으로 끌려가게 된 버선발을 엄마는 자신의 하나 뿐인 겨울저고리를 입혀 물푸레나무 지팡이 하나, 나무칼 하나 쥐어 주고 도망치게 한다. 그리고 버선발을 잡으러 왔던 추격꾼들에게 발가벗겨진 채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헤어진 엄마가 잠꼬대로 외쳤던 그 원수 같은 땅을 짓찧는 것이다.
'머슴'이란 거… 세상에 머슴 아닌 사람 어디 있으랴. 모두 누군가에 속박되어 평생을 허덕이고,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빠져 자신이 머슴인 줄 모르고 살아갈 뿐이지 않은가.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을 때 거기 모두 다 같은 평화와 공존을 목적으로 나섰던가? 어쩌면 선생님께서 단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앞장 서셨던 이유가 각자의 이해와 타산마저 촛불에 태워버리라 일깨우시기 위함 아니었을까.
엄마는 곧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세상이고, 그런 엄마를 괴롭히는 땅은 가진 자들이 세상 모든 걸 복속시키기 위해 알량한 제도라는 허울이 아닐까. 한 시간에 만 원을 주면 경제가 망한다고 악다구니를 쓰다가도, 제 주머니를 채울 때는 슬그머니 그 시간당 만 원의 몇 곱절씩 더 받아내는 거짓된 자들만을 위한 제도 말이다.
다시 <버선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말이다. 빌뱅이가 찾아오면 식은 밥 한 술을 쪼개주고는 나누어주었다 그런다. 그것도 눈물겹게 아름다운 마음이긴 하다. 하지만 가난은 말이다, 가난이란 그렇게 새름(정)만 나누어서 풀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한 술 식은 밥이 아니라 솥째 빼주신 것은 무어냐. 그건 가난은 함께 갈라 쳐야 할 거친 수렁, 사람과 사람의 새름까지 삼키는 고얀 것들의 끔찍한 빨대, 그것을 뿌리부터 발칵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런 뜻이란 말이다."「버선발 이야기 133쪽, '사람이라는 것의 뜸꺼리' 중에서」
어려운 말로 사람들의 귀를 틀어막고, 그게 자신이 아주 대단히 잘난 인물로 보이는 줄 착각하는 무지몽매한 자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이상한 현상을 맨날 보게 되니 눈이 어지럽다. 민중이 신명을 누리며 살아갈 따사로운 정서가 바탕이 된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그리하여 제도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함이 옳은 일이다.
그런데 민중에게 빼앗기 위한 제도로 착취하던 자들이 설치던 과거를 역사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들이 자신만을 위해 착취를 순조롭게 하려고 만든 허무맹랑한 규칙을 법이라 우기지 않던가.
선생님은 버선발의 동무인 개암이의 입을 통해 민중들이 깨닫게 하고자 한다. 민중에게 대물림 된 가난이 몇 푼 동정만으로 해갈될 턱이 없다. 아니 나눔보다야 틀림없이 아름답게 보이긴 한다. 하지만 함께 갈라 쳐야 할 수렁처럼 여기고 뿌리부터 완전히 발칵 뒤집어엎을 때에야 온전히 민중의 지독한 통증이 아물게 된다.
그런데 민중은 과연 그렇게 할 줄 알까? 당장의 내 이득부터 챙기기 바쁘지 않은가? 나 아닌 네가 해서는 안 되고, 나는 옳은데 너는 틀리다고 떠들지 아니 하드냔 말이다. 그리고 너는 나보다 덜 가져야 된다는 뚱심을 도사려 품고 있지는 아니 하드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려고 하면 말이다. 아무려나 사람부터 바꾸어야 하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는 이 살곳(사람이 사람으로 살 만한 곳)을 따로 떼서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과 함께 사람의 이 얄곳(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곳)을 아울러 바꾸어야 한단 말이다." - <버선발 이야기> 135쪽, '사람이라는 것의 뜸꺼리' 중에서
"개벽이 일어나기 전엔 어림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스스로를 깨우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더란 말이다. 스스로를 깨우치는 게 개벽인데 그걸 남 탓으로만 돌리고 순순히 머슴질을 하러 들어가더라 말이다. 종놈은 그나마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되니 머슴질을 떠나 종놈 질을 선택하기 주저하지 않더란 말이다. 그러면서 개벽 타령을 하니 세상이 변하겠나.